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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버라드 칼럼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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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봄부터 준비했으나 감행 안 해

전술핵 개발 기술 문제일 수도  

경제난과 코로나에 주민 의식?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경고가 나온 지 여러 달째다. 7차 핵실험으로 북한이 얻으려는 건 무엇이고, 아직 실험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사실 북한이 전략 핵무기 실험을 추가로 하는 건 기술적·정치적으로 의미가 없다. 2018년 4월 김정은 위원장은 핵 역량 “검증”을 선언했고,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나 미국 독립기념일 같은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시점도 지났다. 한국과 미국을 위협해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고, 협상은커녕 접촉도 현재 없는 상태다.
 북한이 준비한(준비 중인) 핵실험은 소형 전술 핵무기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월 8차 당 대회 때 밝힌 전력 현대화 최우선 과제였다. 지난 4월 16일 시험 발사한 미사일은 전술 핵무기 운반용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왜 전술 핵무기를 원할까. 한국의 재래식 무기에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 북한은 오랜 기간 전략 핵무기 개발에 힘썼다. 자신들의 ‘명예와 존엄’을 위협한다면 미국 본토를 핵으로 공격하겠다는 위협용이다. (미국이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는 망상은 여전하다. 하긴 코로나 바이러스가 눈송이로 전파된다고 믿는 이들 아닌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달 15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위성사진. 3번 갱도 정비를 완료했으며 4번 갱도에서도 새 건설 활동이 관측됐다.            [연합뉴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달 15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위성사진. 3번 갱도 정비를 완료했으며 4번 갱도에서도 새 건설 활동이 관측됐다. [연합뉴스]

 그런 북한이 전술 핵무기에 엄청난 자원을 투자한다는 얘기는 전략 핵무기가 자신들의 목적에 더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는 뜻이다. 전략적 억지가 작동하려면,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미국이 믿어줘야 하고, 미국의 보복을 당하지 않는 선에서 미국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전술 핵무기 개발에 나선 건 이 전제를 달리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전략 핵무기로 공격하고 보복당하면 북한은 전멸할 수 있겠지만, 소형 전술 핵무기로 공격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국이 전략 무기로 보복할 가능성은 작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주한미군이 대상인 전술 핵무기에는 같은 전술 핵무기 대응이 정석이다. 전술 핵탄두를 장착할 단거리 미사일은 미국이 한반도로 들여오거나 한국이 자체 개발해야 하는데 모두 정치적으로 어려운 옵션이다. 이를 북한은 알고 있다.
 섬뜩한 해석도 있다. 북한의 전술 핵무기가 방어용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공격용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는 시각이다. 지난 4월 김정은은 핵무기를 “전쟁 억지라는 목적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며 “위협적인 행위”에 대한 선제적 공격에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전쟁을 또 일으킨다면 핵무기로 주한 미군 및 한국군의 주요 인프라를 파괴하고 서울 점령의 길을 틀 것이다. 북한이 실제 원하는 일은 아닐 테지만 북한 상황이 계속 악화하고 선택지가 좁아질 경우엔 달라질 수도 있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군사력으로 이웃을 침공하는 일은 더는 터부가 아닌 세상이 됐다.
 그러면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먼저 기술적 문제다. 실험 날짜는 정했는데, 막상 기술진이 아직 무기가 완전하지 않다고 털어놓았을 수 있다. 전술 핵탄두 개발은 전략 핵무기와 비교했을 때 기술적으로 더 어렵다. (일반적으로 대형 핵폭탄이 소형보다 제조가 쉽다.) 전술 핵무기 실험이 성공하면 억지력을 발휘하지만, 실패하면 북한 정권엔 큰 망신이다. 실패 우려를 안고 실험하느니 차라리 연기를 택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정치적 압력이다. 2019년 북한은 미국에 주겠다고 한 ‘크리스마스 선물(핵 실험)’을 중국의 압박으로 포기했다. 북한 경제 상황이 그때보다 더 열악해진 만큼 중국 의존도는 더 커졌고, 따라서 중국의 경고가 주는 무게감은 더 크다. 이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강행할 때 북한이 직면할 리스크 또한 엄청나다. 여름 휴가 기간 열리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와 올가을 제20차 당 대회를 앞둔 중국은 지난봄 북한의 핵실험 준비를 인지하자마자 경고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북한 정권의 머뭇거림이다. 북한은 경제난과 코로나 확산, 충성심 약화 문제를 안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핵실험이 북한 주민에게 어떻게 비칠지, 주민들의 분노를 유발할지 아니면 그들을 환호하게 할지 재고 있을 것이다. 핵실험을 준비하라고 지시는 했지만, 강행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뭐건, 누가 결정했건 7차 핵실험을 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