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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기초학력 미달 사태, 코로나 탓할 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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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성태제 이화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성태제 이화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교육부가 ‘2021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고교 2학년생들이 국·영·수 과목 기초학력 미달이 가장 높았고, 그 원인이 코로나19에 기인한 것처럼 분석했다. 기초학력 미달은 10년 전 예견한 그대로다. 다만 기초 학력 미달 원인을 코로나에 돌리는 데는 강한 의문이 든다.

정부는 2000년부터 학업성취도평가를 시행했다. 2001년부터는 국어·영어(초등 6년 제외)·수학·과학·사회 과목에 한정해 초등 6학년, 중학 3학년, 고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목적은 기초학력 보장과 향상, 학력 누적 결손 해소, 학력 격차 완화, 잘 가르치는 학교 분위기 확산 등이었다.

고2 국·영·수 기초학력 계속 하락
코로나 이전부터 우려했던 현상
학업성취도 끌어올릴 정책 시급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기초 미달 학생의 학습 결손이 누적되면 상급 학년 학습이나 진학에 어려움이 크다. 기초 미달 학생을 상대로 방학 동안 보정 학습을 제공했고, 교사에게 가르침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역할도 했다. 2009년도부터 평가가 표본수집에서 전수 시행 체제로 바뀌었다. 2010년부터는 정보공개 특례법에 따라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통 이상, 기초 학력, 기초 학력 미달 등 세 단계로 공개했다. 학부모나 학생이 학업 성취 정도를 알게 되는 긍정적 효과가 컸다.

그러나 교사나 교장, 시·도 교육감은 평가 결과에 대한 책무성에 따른 심리적 부담을 갖게 됐다. 전교조 중심 교사들과 진보 교육감들이 학업 성취도 평가 거부 운동을 벌였다. 2013년부터는 초등 전수평가를 폐지했고, 중·고교는 과목을 줄여 표집 평가로 전환했다가 2017년부터 매우 제한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평가 자체가 학생에게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나 취약한 부분을 학습하도록 함으로써 학업 능력을 향상하는 효과가 있다. 시험에는 교수적 기능이 있다. 그래서 평가를 반대하는 시·도는 실시하지 않아도 되고, 찬성하는 시·도는 평가하자고 교육감들에게 제안했었다.

5년 정도 지나면 두 집단 간 학업 성취도에서 확연한 차이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농·어촌이나 다문화 및 조손 가정이 있는 시·도는 학업 성취도 평가를 거쳐 지역과 가정 배경에 따른 학습 결손을 만회하게 하는 것이 교육감의 책무라 주장했었다.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표집 방식으로 실시돼 교장이나 교사의 부담이 줄었을 수 있으나 교수·학습의 중요성은 경시됐다. 국제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서도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중2~3년생 대상으로 한 2012년과 2018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결과를 보면 읽기는 1~2위에서 2~7위로, 수학은 1위에서 1~4위로, 과학은 2~4위에서 3~5위로 하락했다.

2011년과 2019년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비교연구(TIMSS) 결과를 보면 초4의 경우 수학은 2위에서 3위로, 과학은 1위에서 2위로 떨어졌다. 중2의 경우 수학은 1위에서 3위로, 과학은 3위에서 4위로 밀렸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이미 학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학력 저하는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체적으로 실시하지 않고 학습 보정도 소홀히 한 교육 정책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이라는 주장은 책임을 면하기 위한 비교육적 변명일 뿐이다. 이번 기회에 기존 학업성취도평가 추이는 물론 PISA와 TIMSS 결과를 심층 분석해 한국 학생의 학업 성취도 수준을 끌어올리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로봇, 바이오 신기술, 자율주행 운송 수단과 드론, 빅데이터 분석 등이 보편화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언어·수리·과학 등 기초학업 능력은 물론 정보기술(IT), 컴퓨터와 코딩, 경제 인지 능력도 높여야 한다.

비인간화를 우려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타인종·타문화·타종교를 이해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며, 생태계를 보호하고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행동 특성도 강조해야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쳐야 할 책무는 국가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다. 따라서 교육 정책에 이런 부분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태제 이화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