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염재호 칼럼

정치의 공간과 기술의 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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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기쁜 소식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 달 21일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조 9572억원의 개발비가 들어가는 우리 자체기술의 인공위성 누리호가 마침내 발사에 성공했다. 세계 7대 우주강국에 진입한 감격적 순간이었다. 이는 항공우주연구원만의 쾌거뿐 아니라 참여한 많은 민간기술의 승리이기도 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에 탑재된 액체로켓 엔진기술을 개발하여 6개 엔진의 조립과 납품을 총괄했다고 한다. 한화 김승연 회장은 누리호의 성공을 보고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한 임직원들에게 “지난 십여년 세월 동안 여러분이 흘린 뜨거운 땀방울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편지를 보내 격려했다고 한다.

지난 주에는 프린스턴대학교의 허준이 교수가 노벨상보다도 받기 어렵다는 필즈상을 헬싱키에서 수상했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은 사십세 이하 수학자에게만 사년에 한번 시상한다. 난제 ‘리드 추측’과 ‘로타 추측’ 문제를 허 교수가 풀어 기초과학에서도 한국인의 우수성을 증명한 셈이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귀국해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대에서 학사·석사를 마친 인재이기에 더욱 뿌듯하다.

누리호, 필즈상 등 과학기술계 쾌거
초일류 기술만이 국가의 미래 보장
여의도~세종 하이퍼루프 시도하면
전국 1시간 생활권의 공간혁명 가능

이런 쾌거들을 보면 앞으로 노벨상 수상자들도 연이어 나오게 될 것을 기대해 볼만하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과학기술 연구를 시작한 것이 겨우 이삼십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버드 대학을 위시한 세계 주요 대학에서 활약하는 우리 과학자들이 즐비하다.

최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유럽을 순방하고 나서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고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부존자원도 없는 우리에게 경쟁력은 기술밖에 없다. 초일류기술은 우리의 안보까지 책임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양성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21세기 인류문명사를 바꿀 기술의 하나가 교통혁명이다. 미국 버진 하이퍼루프사의 조사에 의하면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2600여개 하이퍼루프 노선 건설을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캐나다·유럽·UAE·사우디·인도·중국·러시아 등에서 하이퍼루프 건설 추진이 논의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도쿄~나고야~오사카 구간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이퍼루프는 시속 1200㎞로 시속 800㎞인 비행기의 1.5배 속도를 낼 수 있다. 게다가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처럼 비행기에서 나오는 탄소배출을 우려하여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게 되면 하이퍼루프는 비행기를 대체할 미래형 이동수단으로 매우 이상적이다. 안정성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우주를 날고 달나라를 가는데 튜브 안 자기부상열차 기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종시에 새로운 국회의사당을 건설하는데 국회 사무처에서는 1조 4263억원의 비용이 든다고 추산했다. 그 대신 2030년을 목표로 여의도~세종 하이퍼루프 시범 프로젝트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만약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1일 생활권이 되었던 우리나라가 2030년대에는 1시간 생활권이 되는 공간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일론 머스크의 하이퍼루프 건설비용에 따르면 여의도에서 세종까지 130㎞ 정도의 직선형 하이퍼루프를 건설하는데 2조가 채 들지 않는다. 하이퍼루프가 건설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20분, 여의도에서 세종까지 5분이면 갈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세종시에 또 하나의 국회의사당 분원을 지어야 할까?

현재 우리나라 하이퍼루프 기술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시속 1019㎞의 공력시험에 성공했고, 세계 최초로 냉동기 분리형 초전도 LSM추진형 자기부상장치의 기술도 확보했다. 현재 우리 기술로 건설비는 KTX의 절반, 운영비는 KTX의 45% 수준이다. 아진공상태에서 자기부상열차로 운행되기에 튜브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전력비용은 크게 절감된다.

NASA가 달 탐험 아폴로 프로젝트를 추진했을 때 정치적 반대 여론이 드셌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통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기술 선도력으로 세계 일등 국가가 되었다. NASA의 우주개발 기술은 에어쿠션 신발, 인스턴트 커피, 연료전지, 형상기억합금, 라식 수술에 쓰이는 레이저 기술, 고어텍스, 영상 기술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민간기술로 이전되었다. 하이퍼루프 기술개발을 우리가 선점하면 이를 통한 최첨단 민간기술 이전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다음 세대가 살아갈 미래공간은 포퓰리즘에 좌우되는 정치의 공간이 아니라 기술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캐나다의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영웅 웨인 그레츠키는 이런 말을 했다. “훌륭한 아이스하키 선수는 퍽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위대한 아이스하키 선수는 퍽이 날아올 곳을 향해 달려간다.” 위대한 나라와 위대한 지도자는 이삼십년 앞서서 미래를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정치의 공간이 아니라 기술의 공간만이 미래세대를 위한 희망이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