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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성적 나쁠 때도 있지만 수포자였던 적은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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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해 부모님이 좌절한 적은 있었지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였던 적은 없었다.”

한국계 학자로는 처음으로 필즈상(Fields Medal)을 받은 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는 6일 이렇게 말했다.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온라인으로 연 기자간담회에서다. 허 교수는 현재 필즈상 시상식이 열린 핀란드 헬싱키에 머물고 있으며, 다음 주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그는 “수학 성적이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수학에) 관심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열심히 했기 때문에 수포자는 적절하지 않다”며 웃었다.

허 교수는 연구 비결을 묻자 집중력을 꼽았다. 그는 “하루에 4시간만 집중해서 (연구를) 하고 나머지는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온종일 수학을 연구하기에는 지구력이 떨어지고 원래 공부를 오래 못하는 스타일”이라고도 했다. 그는 가족을 언급하면서 “첫째는 7살, 둘째는 1살에서 2살로 가는 중인데, 집안일도 많고 아이들 공부를 봐주기도 하며 머리를 식힌 다음 날 다시 공부하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필즈상 수상기념 기자브리핑’에 핀란드에서 화상으로 연결돼 수상 소감을 밝히는 허 교수. [뉴시스]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필즈상 수상기념 기자브리핑’에 핀란드에서 화상으로 연결돼 수상 소감을 밝히는 허 교수. [뉴시스]

허 교수는 필즈상 수상 소식을 들은 직후 상황도 전했다. 그는 “수상 소식을 듣고 나서 아내를 깨워야 할지 말지 10분 정도 고민하다가 깨웠더니 ‘그럴 줄 알았어’라고 하고 다시 잤다”고 했다. 필즈상 시상식과 연계된 올해 세계수학자대회는 당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상식이 러시아에서 열리지 못했다.

그는 수학의 매력으로 동료애를 꼽았다. 허 교수는 “수학의 매력은 끊을 수 없는 중독성에 있다”며 “우리 하나하나가 생각의 그릇이라고 했을 때 그 안에 들어있는 물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조금씩 물이 줄어들 것 같지만, 그릇에 한 번씩 옮길 때마다 물의 양이 2배, 3배씩 불어난다”며 동료 수학자와의 협업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난해한 구조들을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난다”며 “그 과정을 준비하면서 만족감을 얻었고 수학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자신의 롤모델로 스승과 친구들을 지목했다. 그는 “(연구하면서) 어려움을 만났을 때마다 배워야 할 것과 필요한 것이 다른데 그 시기마다 배울 수 있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왔다”며 “수첩에 적혀 있는 친구와 선생님이 나의 영웅이자 롤모델”이라고 했다. 한국 교육에 대한 질문에는 “지금의 저로 성장하는 데 있어 자양분을 준 소중한 경험”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젊은 수학자들이 모두 잘해주고 있다”며 “젊은 수학자가 부담감을 느끼고 단기적인 목표를 쫓지 않도록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유롭고 안정적인 연구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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