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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생물부터 AI까지 아우르는 진화의 한 부분" : 아니카 이 인터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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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와 그의 '아네모네 패널' 시리즈의 최신작. 서울 강남 글래드스톤 갤러리. [사진 글래드스톤]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와 그의 '아네모네 패널' 시리즈의 최신작. 서울 강남 글래드스톤 갤러리. [사진 글래드스톤]

영화 ‘기생충’(2019)에서 박사장(이선균)은 그의 운전기사로 들어온 기택(송강호)에 대해 이렇게 불평한다. “김 기사 그 양반,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 절대 넘지 않아.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이 말을 엿들은 기택은 모멸감에 빠진다. 이렇게 냄새라는 것은 정치사회적 함의를 지닐 수 있는 동시에, 선을 긋고 구분과 차단을 하려는 시도를 의도치 않게 좌절시키는 분자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지금 세계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51)는 냄새를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 인터뷰

미국 갤러리 글래드스톤의 서울 강남 지점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시작한 이 작가를 지난 달 중앙SUNDAY가 만났을 때 서울의 냄새는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냄새를 - 부엌에서 나는 음식 냄새든 체취든 - 지나치게 억누르거나 기피하려 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고 신선하다. 서구에서는 냄새를 억누르고 철저히 없애려 애쓴다. 특히 은행이나 미술 갤러리 같은 (권위적인) 공간에 들어갈 때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야 한다.”

이어서 작가는 냄새를 꺼리는 경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냄새라는 것은 신체에 대한 불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냄새를 맡는 것은 냄새 분자를 흡입하는 것이라 그 분자가 말 그대로 몸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해롭든 해롭지 않든 잠재적 위험에 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대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사회정치적인 측면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각종 오염에 시달리고 있는데, 여기에 불평등이 존재해서 가난한 사람일수록 공장에서 뿜어내는 유독성 연기에 노출되기 쉽고 청정한 공기에서 숨쉴 기회가 적다. 이런 식으로 냄새와 악취가 어떻게 정치적 이슈가 되는가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테이트 모던 '현대 커미션'에서 아니카 이의 에어로브가 공중을 떠다니는 광경. [사진 테이트 모던, 현대차]

지난해 테이트 모던 '현대 커미션'에서 아니카 이의 에어로브가 공중을 떠다니는 광경. [사진 테이트 모던, 현대차]

그런 맥락에서 아니카 이는 지난 2월에 끝난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현대 커미션’ 전시에서 거대한 터바인홀을 1주일마다 다른 냄새로 채웠다. 권위적인 무취의 공간이며 시각이 지배하는 공간인 미술관에서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냄새를 맡도록 한 것이다. 그 냄새는 미술관이 위치한 템즈 강가의 시대별 냄새를 과학자들과 협업해 재창조한 것으로 수억 년 전 선캄브리아 시대의 냄새부터 19세기 콜레라 창궐기까지 아우르는 것이었다. 또한, 해파리를 닮은 “생물화된 기계”들이 시각화된 냄새 분자처럼 터바인홀 공중을 떠다니면서 인공지능으로 관람객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 위를 맴돌도록 했다.

아니카 이는 공중을 떠다니며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 존재인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와 포자 같은 미생물도 작가의 작품 재료로 활용되곤 했다. 특히 2015년에는 뉴욕의 대안공간 ‘더 키친’에서 100명의 미술계 여성에게서 채취한 박테리아를 배양하는 접시를 포함한 설치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6년 그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휴고보스 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간과 공기를 타인과 공유하는 것에 대해 날카롭게 의식하고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공기 중에 떠다닐 바이러스 분자를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오래전부터 공기의 일부가 되는 분자들을 생성해 내오고 있다. 죽어서 시신이 부패할 때 이산화탄소가 나오게 되는데 그것을 흡수하며 나무들이 자라서 (생명의) 사이클이 계속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 공기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게 된다.”

아니카 이의 '네스트' 연작과 '템푸라 프라이드 플라워' 연작이 글래드스톤 서울에 전시된 모습 [사진 글래드스톤 제공]

아니카 이의 '네스트' 연작과 '템푸라 프라이드 플라워' 연작이 글래드스톤 서울에 전시된 모습 [사진 글래드스톤 제공]

아니카 이는 거대한 생의 순환에서 미생물과 인간, 식물과 동물, 유기체와 기계 간의 경계선이 우리의 고정관념처럼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생각은 글래드스톤 서울 갤러리에서 7월 8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Begin Where You Are(네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에서 털 난 피부 같은 실리콘 액자에 실크 꽃이 돋아있는 ‘치킨 스킨’ 시리즈, 곤충의 집을 기계 구조로 재탄생시킨 ‘네스트’ 시리즈 등에 반영돼 있다. 개인전의 하이라이트는 ‘아네모네 패널’ 시리즈의 한 점으로 원생생물이 떠다니는 액체를 묘사한 듯한 와인색의 거대한 부조다. 글래드스톤에 따르면, 말미잘과 산호의 형태가 미국나사(NASA)에서 개발한 자성을 띠는 액체인 페로플루이드가 만드는 형태와 놀랍도록 유사한 것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치킨 스킨’ 연작은 동식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를 표현한 것인데, 브라질 아마존 강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들었다.
A 그렇다. 브라질은 세상에서 가장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곳 중 하나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인류학자와 생물학자와 함께 강을 따라 700마일(1,126km)을 여행하며 보트 위에서 10일간 생활했다. 거기에서 브라질 토착 부족들이 생명을 대하는 관점에 대해 들었는데, 모든 것을 친척으로 본다는 것이다. 즉 원숭이는 내 형제이고, 식물은 내 자매이며 종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꽃가루를 수분(受粉)하는 곤충을 흉내 낸 모양으로 진화한 식물도 볼 수 있었다. 그것에서 영감을 받아 3D 영화를 제작했는데, 반은 식물이고 반은 동물로서 환각적이고 마술적인 특성을 가지는 상상의 꽃에 대한 영화다. 종간의, 종을 초월한 관계성에 대한 작품이다. 지금의 종 구분은 산업화된 세계에서 인위적으로 창조된 것이다.

아니카 이의 '치킨 스킨' 연작이 글래드스톤 서울에 전시된 모습. [사진: 글래드스톤 제공]

아니카 이의 '치킨 스킨' 연작이 글래드스톤 서울에 전시된 모습. [사진: 글래드스톤 제공]

Q 당신의 작품은 동식물의 경계는 물론 생물과 기계의 경계도 넘나드는 것으로 보인다. 테이트 모던 ‘현대 커미션’ 전시에서 공기 중에 떠다니며 인공지능으로 사람들을 감지하고 접근하는 에어로브(aerobe)들을 선보였는데, 관람객의 반응은 어땠는가?
A 나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그 기계들과 일종의 유대감을 형성하더라.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기계가 인간의 경쟁자나 지배자가 되는 대신 인간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통찰을 얻게 되었다. 에어로브를 개발할 때 인공지능 (로봇)이 반드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특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다른 생명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나는 에어로브들과 극도의 유대감을 느꼈고, 그들이 작동할 때 상당히 감정에 넘치게 되었다.

Q 하지만 그들은 그림이나 조각처럼 오래 보존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오래 보존되는 기념비적인 작품보다는 부패하고 사라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한 것을 봤는데, 유대감을 느낀 작품이 사라질 때 슬프지는 않은가?
A 나는 엔트로피와 퇴락의 과정에 관심이 많다. 이것은 생(生)의 일부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것을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정지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죽음이 생의 일부이고 이들을 아우르는 순환이 진화의 한 부분으로 계속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모두는 진화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심지어 기계와 인공지능까지 아우르는 진화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인공지능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 또한 진화와 자연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리움미술관에 소장된 아니카 이의 고치 형태 작품. [사진 문소영]

서울 리움미술관에 소장된 아니카 이의 고치 형태 작품. [사진 문소영]

Q 2015년 뉴욕에서 에볼라 공포가 일어날 때 여성들의 박테리아를 모은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혹시 지금 코로나19에 관한 작품도 창작하고 있는가?
A 그에 관한 별도의 작품을 창작하고 있지는 않고, 다만 코로나19가 우리 문명에 미친 영향, 인류의 공포 및 컨트롤 전략이 확대되는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2015년 ‘더 키친' 전시 당시 나는 공기와 미생물에 대한 사회적인 불안과 공포를 강조하고 싶었다. 우리가 이토록 긴장과 폭력적인 반응을 창출하는 것은, 우리가 자연의 코스모스를 살아오면서도 우리 자신을 자연 바깥의 존재로, 예외적인 존재로 분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미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도 수많은 박테리아, 바이러스와 그밖에 미생물의 집합체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 생각에 질색한다. 얼마나 모순적인가. 심지어 2년간의 팬데믹에도 인간은 배운 것이 별로 없고 엄연히 생태계와 생의 순환의 일부인 것을 컨트롤하고 차단하고 지배하려고만 했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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