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정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맡기고 저는 하방하고자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지난 3월 자신의 온라인 플랫폼인 ‘청년의꿈’에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홍 당선인은 여전히 윤 당선인에게만 중앙 정치를 맡긴 것 같진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의 최근 메시지를 보면 ‘하방’ 이전만큼 관심이 중앙 정치에 쏠려 있다.
“중앙 정치에서 잊히길 원하지 않을 것”
홍 당선인은 26일 ‘청년의꿈’ 게시판에 ‘제가 40년 공직생활 동안 여성스캔들이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요즘 각종 스캔들로 고초를 겪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참 안타깝게 보이기도 하지만, 세상 살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는데 그걸 모든 가치판단의 중심으로 치부해 버리는 세상이 되다 보니 참 그렇다”고 썼다. 그러면서 성 상납 의혹 등으로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심의를 받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잘 헤쳐 나가기 바란다”고 썼다.
홍 당선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칭한 듯 “‘성남총각’도 멀쩡하게 야당 지도자가 돼 있지 않냐”고도 했다. 배우 김부선씨는 이 의원과의 밀회설을 폭로하며 그를 ‘성남 가짜총각’으로 지목했다.
이 대표는 27일 방송에 출연해 “(글을) 올리기 전에 (홍 당선인이) 연락을 주셨다”며 “적재적소에 좋은 조언을 해주시고, 저를 굉장히 아껴주시기 때문에 특유의 익살이지 저를 골탕먹이려고 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홍 당선인은 당선 이후 페이스북에도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는데, 중앙 정치의 굵직한 현안에도 훈수를 빼놓지 않았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지난 23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임기(20일), 박지원 전 국정원장 발언(16일), 전 정부 보복수사 논란(15일), 국민의힘 당내 갈등(13일) 등 중앙 정치에서 화제를 모으는 이슈마다 글을 올렸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홍 당선인이 하방한다고 했지만, 중앙 정치에서 잊히는 걸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차기 대선을 노릴 것이라고 누구든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인데 대구시장으로 있으면서도 중앙 정치에 자신의 존재감을 계속 보여주려고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대구시 서울사무소가 차기 대선 캠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줄타기하는 듯한 洪의 메시지
정치권은 홍 당선인의 메시지의 톤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메시지가 미묘하게 줄타기하는 듯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컨대 홍 당선인은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신분일 때만 하더라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대선 기간이던 지난 1월 홍 당선인과 윤 대통령(당시 후보) 측이 국회의원 보궐 선거 공천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홍 당선인은 윤 대통령을 향해 “면후심흑(面厚心黑·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검다)”이라고 비판했다. 또 윤 대통령을 향해 “1997년 대선 패배의 재판이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홍 당선인의 메시지는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홍 당선인은 기존엔 검찰보다는 경찰에 유리한 발언을 주로 해왔지만, 행안부 경찰국 신설과 관련해서는 “왜 유독 경찰만 강대해진 권한만 누리고 예산·인사의 민주적 통제는 받지 않으려고 하는가”라며 윤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톤을 맞췄다. 전현희 위원장 등 사퇴 압박, 전 정부 보복수사 논란 등에서 홍 당선인의 메시지는 윤 대통령을 두둔했다.
홍 당선인은 당내 내홍이 불거지자 “아직 정치물이 덜 든 대통령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당권투쟁에만 열을 올린다면 그건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차기 대선을 노리는 입장에서 발톱을 숨긴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홍 당선인은 과거 대표적인 ‘홍준표계’ 인사로 꼽혔던 배현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준석 대표와 배 최고위원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설전을 벌인 데 대해 홍 당선인은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당대표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대표의 미숙한 지도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최고위원이 달라진 당헌체제를 아직 잘 숙지하지 못한 탓도 있다”며 배 최고위원을 나무랐다.
배 최고위원은 2018년 홍 당선인이 당 대표 시절 영입하면서 ‘홍준표 키즈’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당 경선이 끝난 뒤 윤석열 캠프에 참여하면서 홍 당선인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