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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만원 내고 근육통 얻었지만 뿌듯...3년만 돌아온 '농활'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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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면 밭으로 나가고 별이 뜨면 막걸릿잔을 기울였다. 사 먹기만 했던 포도에 농약을 치고 봉지를 씌우는 일 신기하면서도 즐거운 체험이었다. 수박, 김밥, 닭볶음탕까지 마을주민들이 하루에 두 번 주는 새참도 별미였다.’

‘농활’의 추억은 20~30년 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대학 동기·후배들과 경북 상주에 다녀온 성균관대 경영학과 2학년 허성현(20)씨의 경험담은 수십 년 전 선배들의 추억으로 시간여행을 한 듯 비슷했다. 허씨는 “처음 해보는 농사일에 알이 배기고 온몸이 근육통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땀 흘리며 일하니 뿌듯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새내기 때는 못했던 대면 활동”이어서 학생들의 의욕이 넘친다고 한다.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가에 ‘농민 봉사활동’ ‘농민학생연대활동’이라 불리는 ‘농활’이 뜨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던 농활은 방역 완화로 3년 만에 재개되고 있다. 단체활동, 대면 활동에 목말랐던 ‘코로나 학번’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성균관대]

성균관대 학생들이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성균관대]

일상 회복과 함께 돌아온 대학생 농활

한국외대 총학생회의 농활 홍보 포스터. [사진 한국외대 총학생회]

한국외대 총학생회의 농활 홍보 포스터. [사진 한국외대 총학생회]

고려대, 동덕여대, 한국외대 등 서울 주요 대학들의 총학생회는 다음 달 경북 안동, 충남 논산, 충북 괴산 등으로 가 농활을 진행한다. 성균관대는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경북 상주시 일대 12개 마을에서 감자 수확, 제초 작업, 포도 순 정리 등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도왔다.

김민지 한국외대 농활 추진위원장은 “학생과 농민들이 만나는 연례행사가 코로나19로 인해 끊긴 점이 아쉬웠는데,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서 올해 재개하게 됐다”며 반가워했다. 그는 “홍보가 많지 않았는데도 80명 이상이 신청했다. 그중에서도 22학번 새내기들의 지원이 많다”고 말했다.

낯선 곳에서 해보지 않은 농사일을 하고 7만~8만원의 참가비도 내야 하는데 학생들의 호응이 뜨겁다. 대학 관계자들은 “그동안 코로나19에 억눌렸던 오프라인 행사에 대한 수요가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성균관대의 경우 농활 12개 팀을 선발하는데 100개 팀 이상이 지원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농활 신청 첫날에 지원 홈페이지가 일시적으로 다운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농활 경험 없는 선배들 세미나 참여

3년 만의 농활 부활은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했다. 농활을 경험해 본 선배들이 거의 졸업해 2, 3학년들은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예산을 짜고, 어떻게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하는지를 공부해야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학생 단체인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지난 18일 ‘농활 사용 설명서’라는 원격 세미나를 열고 농활 프로그램 짜는 방법 등을 공유했다. 김민정 전대넷 집행위원장은 “대학 시절의 ‘로망’으로 꼽히는 농활에 대한 각 학교 학생들의 재개 요구가 많았다고 들었다. 농활을 진행하는 총학 집행부 중에서 정작 농활을 다녀온 학우들이 없어서 세미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12개 대학 30여명이 세미나에 참여했다고 한다.

서툴러도 일손 없는 농촌엔 ‘단비’

성공회대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24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택1리에 농활을 나와 일손이 부족한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꽈리고추 수확 작업을 돕고 있다. 연합뉴스

성공회대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24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택1리에 농활을 나와 일손이 부족한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꽈리고추 수확 작업을 돕고 있다. 연합뉴스

오랜만에 돌아온 농활은 단비 같은 존재라고 한다. 지금 농촌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일할 사람이 없어 인력난이 만성화된 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외국인 노동자 구하기도 어려워져 일할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과일 적과(열매 솎기), 논둑 정리, 폐기물 처리 등 꼭 해야 하는데 손이 모자라서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일을 학생들이 와서 돕는 것이 농가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젊은 사람이 와서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농민들에게 큰 힘을 준다”고 덧붙였다.

농활에 대한 대학생들의 높은 관심에 긍정적인 시선이 많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Z세대 대학생들은 기후변화, 생태에 대한 관심이 많다. 여기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활동을 할 수 있으니 농활에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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