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강수의 시선

정권 교체가 가져다준 교훈

중앙일보

입력 2022.06.23 00:30

업데이트 2022.06.23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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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020년 9월 북한군이 사살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김종호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9월 북한군이 사살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김종호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게 그리도 어렵나. 선량한 사람은 억울한 경우 안 당하며 평화롭게 살고, 죄지은 사람은 정의의 심판을 제대로 받는 법치국가를 만드는 것 말이다. 우리는 아직 먼 것 같다. 여전히 ‘국민정서법’이 위세를 떨친다. 죄를 짓고도 죄지은 적 없다고 우기면 절반 가량의 국민이 믿어준다.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아도 내 편이라는 이유로 슬쩍 넘어가준다. 어깨를 토닥거리며 안아준다. 네 옆엔 우리가 있으니 주눅 들지 말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북돋운다. 검찰이 기소해도 “짜맞추기 수사에 무리한 기소”라고 주장하며 공소장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원래 검찰이란 조직이 오만방자하니 괘념치 말라 한다. 무소불위라 손봐야 한다며 한동안 6대 범죄냐, 2대 범죄냐 갑론을박하더니 수사권을 뎅강 잘라 경찰에 넘겼다. 종국적 결과물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법들 아닌가.

국민정서법의 문제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이 몇 가지 있었다. 야당 울산시장 후보가 선거 출마를 선언한 날, 경찰이 강제 수사에 착수했던 것은 그중 하나다. 선거 때 강제수사는 금기에 가깝다. 이상한 일에는 이유가 있다. 2년 뒤 청와대 하명 의혹이 불거졌고, 문재인 정부 인사 15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남북한 주민에 피해 입힌 두 사건
진상 규명 서둘러 법치 확립해야
검사, 범죄 알고도 지나쳐선 안돼

‘북한 주민 강제 북송’ 사건(2019년 11월 발생)의 처리 방식도 요상했다. 선상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귀순했다는 북한 주민 2명을 나포 5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살인의 증거가 없는데도 서둘러 송환했다. 2020년 9월엔 우리 국민(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 이대준씨)이 서해 북한 해역에서 북한군 총격에 사망하는 비극적 사건이 벌어졌다. 10개월 전과 처리 방식이 유사했다. 해경과 국방부 등은 1주일 만에 “당사자가 월북(越北)을 시도하다 숨졌다”고 발표했다. 진상 규명보다 덮는 데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남과 북 주민의 생사가 관련된 사안에서 북한 당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신속한 조치를 취한 것은 ‘김정은 대변인’ 정권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힐난에 휩싸였다. 이상 행태에는 배후의 존재가 십상팔구(十常八九)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해경은 “자진 월북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 등은 “월북 단정은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전례가 드문 국가기관의 양심선언이다. “월북 가능성을 조사하라는 윗선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진상을 규명하라는 유족들과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커지는 건 순리다. 이 씨의 아내는 “세월호 조사를 9번 진행하는 동안 남편은 제대로 된 수사 한 번 안 했다.” “똑같이 소중한 목숨인데 어떻게 그렇게 선택적으로 말할 수 있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세월호는 학생 포함, 승객 304명이 숨진 대형 재난이었다. 수많은 생명들이 맹골수도 차가운 바다 밑에 수장됐다. 서해 피격 사건의 희생자는 한 명이다. 그렇다고 선택적으로 무시해도 되는 사안이 아니다. 국민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문제라서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존재냐는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국가는 이씨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에 기반한 책임과 의무를 다했느냐는 것이다. 북한 선박에 나포돼 피살될 때까지의 ‘6시간 의혹’의 끝에는 최고 권력자들이 자리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으면 책임있는 당국자가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민생이 급한 지금 왜 그거를 하느냐”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더니 ‘정치 보복 수사’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내 편을 겨냥하면 정치 보복이고 상대편을 겨냥하면 정당한 수사라는 이중 잣대가 어른거린다. 이번 서해 피격 사망 사건의 급변침 원동력은 정권 교체가 결정적이다.

국가권력이 교체되면 위부터 아래까지 많은 것들이 줄줄이 교체된다. 그 풍광은 처연하다. 전 정권에 ‘부역’한 검사장급 간부들은 법무연수원, 대구고검 등으로 밀려났다. 핍박을 받고 한직으로 돌던 검사들은 요직에 중용된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씁쓸하지만 일선 검사들에겐 범죄를 보고도 지나쳤다간 인사 불이익은 물론, 직무유기로 처벌받을 수도 있음을 환기한 계기다. 아마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때 서울동부지검 검사들이 정권의 압력에도 묵묵히 수사하고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3년 동안이나 무혐의 처분하지 않고 갖고 있다가 결국 재수사에 나선 데는 검사로서의 자긍심과 함께 이런 경계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정권이 좌우로 왔다갔다 하는 과정에서 법치는 한 발짝 전진한다. 정권 교체의 주기는 10년에서 5년으로 짧아졌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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