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토익만 봐도 잔고가 텅~" 응시료 너마저, 취준생은 웁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년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박도영(25)씨는 영어 말하기 시험인 ‘토익스피킹’ 접수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다음 달부터 시험응시료가 인상되기 때문이다. 박씨는 “원래 기간을 길게 잡고 공부를 충분히 한 뒤에 시험을 치려고 했는데 응시료가 올라서 이번 달 시험에 접수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며 “토익과 토익스피킹은 취업준비생 기본 스펙이라서 안 볼 수가 없는데 시험 비용만 치러도 잔고가 텅 비어버린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취업게시판에서 채용정보를 살펴보는 대학생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대학교 취업게시판에서 채용정보를 살펴보는 대학생 모습. 뉴스1

어학시험 응시료 ‘도미노 인상’

토익스피킹 응시료가 10년 만에 다음달 2일 정기시험부터 기존 7만7000원에서 8만4000원으로 7000원 오른다. 한국토익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토익스피킹 응시료가 10년 만에 다음달 2일 정기시험부터 기존 7만7000원에서 8만4000원으로 7000원 오른다. 한국토익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치솟는 물가에 취업준비생(취준생)의 지갑 사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취업 필수 스펙’인 어학시험의 응시료가 줄줄이 오르면서다. 토익스피킹 응시료는 10년 만에 다음 달 2일 정기시험부터 기존 7만7000원에서 8만4000원으로 7000원 오른다. 중국어능력평가시험인 HSK(중국한어수평고시) 응시료도 지난 3월 시험부터 급수에 따라 최소 5000원에서 최대 2만2000원 인상됐다. 해외취업을 위해 보는 시험인 아이엘츠 역시 지난 4월부터 일반 기준 26만 8000원에서 27만 3000원으로 5000원 올랐다.

뛰어오른 응시료의 배경에는 고물가가 있다. 한국토익위원회, HSK한국사무국 등 어학시험 주관기구들은 물가 상승과 시험 관리 비용의 증가로 응시료를 인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토익위원회 측은 “2012년 이후 10년간 동일하게 적용해 왔으나, 그동안의 물가 상승과 지속적인 시험 관련 제반 비용의 증가로 인해 부득이하게 인상하게 됐다”고 했다.

취준생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는 '스피킹 시험들은 안 그래도 비쌌는데 또 인상된다' '돈은 없는데 시험을 안 볼 수도 없고 답답하다' '스펙도 인플레이션이더니 응시료도 인플레이션'과 같은 불만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취업준비생들 “시험 응시료만 수십만원”

취준생들은 어학 점수를 올리기 위해 같은 시험도 보통 두세번 치른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시험 응시료에만 수십만원을 쓰는 실정이다. 취업준비생 최모씨(25)는 “같이 취업을 준비하는 한 친구는 토익 점수를 10점이라도 더 올린다면서 시험을 5번 보기도 했다”며 “취업준비 기간이 오래되면 성적이 만료돼 시험을 다시 치기 위해서 돈을 또 써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외국계 기업에 도전하는 취준생들의 한숨이 깊다. 이모씨(25)의 경우 어학시험 응시에만 지출한 돈이 60만원에 달한다. 이씨는 “토익스피킹 점수가 잘 안 나와서 또 다른 영어 말하기 시험인 오픽을 치기도 하고, 가장 높은 급수인 HSK 6급은 응시료만 10만원이 넘는다”며 “학원비, 교재비,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이동하는 교통비까지 더하면 100만원은 훌쩍 넘어갈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학원 대신 유튜브 공짜 강의 들어요”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어학시험 독학 영상.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어학시험 독학 영상. 유튜브 캡처

비싸진 응시료에 취준생은 돌파구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교재를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중고거래를 하고, 학원에 다니는 대신 독학 방법을 찾아 나선다. 블로그·유튜브·에브리타임 등에선 독학 방법이 공유되곤 한다. 대학생 강준형(26)씨는 “매일 유튜브 강의로 토익과 토익스피킹을 독학하고 있다”며 “학원은 물론 스터디 카페 등에 가는 비용도 부담돼 집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험 응시료가 청년들의 주요 불만으로 부상하자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응시료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는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토익·토익스피킹·오픽 중 한 시험에 대해 응시료를 연 1회 지원한다. 경기 안양시는 토익·토플을 비롯해 영어·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러시아어 시험 중 한 과목에 한해서 응시료를 연 1회 최대 10만원까지 지원한다. 하지만 취준생 사이에선 “특정 지역만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데다 지원되는 시험 범위도 한정돼 혜택이 제한적”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청년에 초점을 맞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