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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멸종위기종 산양 분포지도 발로 뛰어 5년 만에 완성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멸종위기종 산양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 산양 [국립공원관리공단]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전국 분포 지도가 완성됐다.
기존 자료를 정리해 만든 것이 아니라 전국을 발로 뛰며 확인해서 만든 것이라 산양 보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대구대 생물교육과 조영석 교수는 2018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최근 완성한 전국 산양 분포 지도를 16일 중앙일보에 최초로 공개했다. 국내에서 전국 규모로 체계적인 산양 서식 분포 지도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출신인 조 교수는 2020년 3월 대구대로 옮긴 후에도 작업을 계속해 이번에 5년 만에 지도를 완성했다.

남한 육지 12% 지역에서 산양 서식

산양분포지도.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산양 서식이 확인된 곳이다. 노란색은 4개월 이상 무인카메라를 설치했지만 관찰되지 않은 곳이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서울과 포천, 의정부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곳이다. [자료: 대구대 조영석 교수]

산양분포지도.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산양 서식이 확인된 곳이다. 노란색은 4개월 이상 무인카메라를 설치했지만 관찰되지 않은 곳이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서울과 포천, 의정부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곳이다. [자료: 대구대 조영석 교수]

조 교수는 남한 전체(육지 부분)를 가로세로 10㎞ 간격으로 1027개 구역으로 나눴고, 이 가운데 산양 서식 가능성이 있는 364개 격자를 직접 조사했다.

이 연구는 '산양 서식지 적합성 모형'을 구축하는 과제에서 시작됐다. '모형'은 기존에 알려진 산양 서식지의 특성을 바탕으로 산양 서식 가능성이 높은 곳을 제시하는 도구인데, 이 '모형'이 정확한지를 직접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도를 만들게 됐다.

조 교수는 현장에서 배설물을 촬영하거나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영상에 담는 방법으로 산양 서식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다. 이를 통해 전체 격자의 12%, 조사 대상 격자의 34%인 123개 격자 내 892개 지점에서 산양 서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도에는 서식이 확인된 지점을 붉은색으로, 무인카메라를 4개월 이상 운영했음에도 서식이 확인되지 않은 지점은 노란색으로 표시했다. 산양이 관찰된 서울과 포천, 동두천 지역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지난 2018년 서울 중랑구 용마산에서 관찰된 산양. [한강유역환경청]

지난 2018년 서울 중랑구 용마산에서 관찰된 산양. [한강유역환경청]

노란색으로 표시한 지점도 향후 서식지 모형 구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서식이 확인된 지점과 확인되지 않은 지점을 비교, 서식지의 어떤 요소가 중요한 것인지 분석할 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설악산이나 오대산, 비무장지대 인근, 삼척과 울진, 월악산 인근 등 지금까지 알려진 서식지 외에도 경기도 가평, 경북 상주와 포항 등 새로운 서식지가 확인된 것은 큰 성과다.

조 교수는 "서식 여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춘 연구여서 개체 수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는 더 많을 것"이라며 "체계적인 서식지 조사가 몇 년 후 다시 진행된다면 개체 수가 늘어나는지, 서식지가 확대되는지 등 추세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전국에 지금까지 700~800마리의 산양이 서식하고 있고, 서식지도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막이 찢기는 사고 당하기도

산양 서식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조영석 교수 연구팀이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는 모습. [조영석 교수 제공]

산양 서식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조영석 교수 연구팀이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는 모습. [조영석 교수 제공]

조영석 대구대 교수.

조영석 대구대 교수.

조 교수는 "2019년에 조사를 끝내야 했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터지는 바람에 산양 조사가 중단됐다"며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환경부 지원도 중단돼 학교 연구비로 사업을 마무리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전국을 다니면서 어려움도 겪었다. 2019년 5월에는 강원도 정선에서 조사하다 뱀이 나왔고, 뱀을 피하다 나뭇가지에 귀를 찔려 고막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치료를 받고 회복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조 교수는 "산양의 서식을 위협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현재로써는 ASF를 차단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설치한 울타리가 가장 눈에 띄는 위협이라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원도 화천은 산양의 주요 서식지이면서 ASF가 심하게 발생한 지역이어서, 울타리가 산양의 이동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겨울철에 먹이가 부족한 데도 이동이 불가능해 폐사하는 산양이 늘기도 했다.
조 교수는 "산양은 대부분 고산 지대에서 살기 때문에 도로와 차량 통행은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번 ASF 울타리는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원 양구와 화천 경계지역에 설치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광역 울타리. 연합뉴스

강원 양구와 화천 경계지역에 설치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광역 울타리. 연합뉴스

조 교수는 이번에 공개한 산양 분포 지도에 서식지 모형 분석을 추가 진행하고, 산양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정리해 국제 학술지에 투고 예정이다.

현재는 산양 배설물에서 DNA를 분리하고 유전자를 분석해 곳곳의 서식지에 있는 산양의 '계보'를 만드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유전자 분석은 산양의 분포와 이동, 짝짓기와 출산 등 무리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고, 개체수를 파악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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