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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빅5 중 유일 생존” ‘환갑’ 맞은 대신증권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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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지난 14일 서울 중구 대신증권 본사에서 만난 오익근 대표는 1987년 입사, 2020년 사장까지 오른 ‘35년 대신증권맨’이다. 장진영 기자

지난 14일 서울 중구 대신증권 본사에서 만난 오익근 대표는 1987년 입사, 2020년 사장까지 오른 ‘35년 대신증권맨’이다. 장진영 기자

“1990년대 ‘빅 5’ 증권사 중 살아남은 유일한 증권사에요. 위기관리 능력 덕분에 수많은 고비를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는 20일 60번째 생일을 맞는 대신증권의 오익근(60) 대표의 말이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대신증권 본사에서 만난 그의 말에는 ‘35년 대신증권맨’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1987년 공채로 입사한 뒤 2020년 사장이 됐다. 1962년 삼락증권으로 출발한 대신증권은 지난 75년 3월 창업자인 고(故)양재봉 창업자가 인수한 후 그해 4월 사명을 대신증권으로 바꿨다.

대신증권의 60년은 한국 증권 시장의 역사와도 같다. 인터넷 등 기술의 진화로 이젠 사라졌지만, 1979년 시세전광판을 지점 객장에 처음 들여놓은 곳이 대신증권이다. 국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시작인 ‘사이보스’도 대신증권이 지난 97년 처음 선보였다.

시장의 변화를 이끈 ‘증권사 최초’란 타이틀만큼이나 60년의 세월에서 눈에 띄는 건 ‘위기관리 능력’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버텨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외환위기 당시 5대 대형 증권사였던 대신·대우·동서·쌍용·LG 중 문을 닫거나 주인이 바뀌지 않은 곳은 대신증권이 유일하다.

오 대표는 “(창업자는) 지난 95년 돈을 벌었을 때 빚(단기차입금)을 다 갚고 무차입경영에 들어갔다”며 “2년 뒤 외환위기가 터져 상당수 기업이 연 30%에 이르는 고금리에 부도에 몰렸지만 (대신증권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0년 증권업계를 흔들었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때도 대신증권의 리스크 경영이 빛을 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ELS 기초자산이던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며 원금 손실 사태가 이어졌다. 대신증권은 투자자 피해가 거의 없었다. 2016년 홍콩증시가 폭락할 때 ELS 투자로 손실 우려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발행 규모를 줄인 덕분이다.

하지만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게 시장이다. 2000년 초반 증시 환경은 바뀌고 있었다. 낮은 수수료로 무장한 온라인 증권사가 등장했고, 자본시장법이 바뀌면서 자기자본 규모에 따라 사업 영역이 결정됐다. 경쟁에서 밀릴 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를 바꾼 결정적인 순간으로 오 대표는 2011년 저축은행 인수를 꼽았다. 보수적이고 깐깐한 대신증권의 변화를 알린 ‘신호탄’이었다.

당시 저축은행 인수 총괄(TFT 본부장)을 맡았던 오 대표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중앙부산과 부산2, 도민저축은행을 우량한 자산과 부채만을 인수하는(P&A) 방식으로 인수했다”고 말했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다.

오 대표는 “대신증권은 증권을 비롯해 자산운용, 저축은행 등 금융 부문과 에프앤아이, 자산신탁 등 부동산 부문의 전문성을 결합해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어 냈다”며 “최근 10년간 금융그룹으로서의 성장이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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