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민자 분주한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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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YS 회견서 “단식때 심정” 각오 피력/민주계 의원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31일 상도동 자택에서 있었던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의 기자회견은 시종 긴박감이 감도는 분위기.
김 대표는 상기된 표정으로 준비된 회견문을 읽었는데 내각제개헌 반대를 말하면서 『앞으로 5공시절 연금중 모든 것을 버리고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을 하던 심정으로 정도를 걷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토로하자 일촉즉발의 분위기.
그는 문제의 각서공개에 대해 『세계정치사에서도 정치지도자들간의 약속은 20∼30년 비밀로 하고 있으며 무덤에 갈때까지도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유감과 곤혹감을 되풀이해 토로하며 민정ㆍ공화계와의 일전불사 의사를 피력.
이날 2층 응접실 회견장에는 1백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김 대표가 집권당 대표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대목은 박희태 대변인의 참석일 뿐 야당시절의 YS를 연상케 했다.
○…수습국면으로 접어들던 각서공개 파문이 최악의 상황으로 재반전된 것은 30일 오후부터.
김 대표는 이날 석간신문의 낙관적 전망 기사내용을 보고 『이런 게 아니다』며 김우석 비서실장을 통해 설명했고 이날밤 고교동창들과 저녁모임이 끝난 뒤 자택으로 돌아와 기자회견 준비지시를 내리면서 각오를 굳혔다.
김 대표의 이같은 초강경 대응은 29일 밤 김동영 정무장관으로부터 노 대통령의 견해와 30일 아침 최창윤 정무수석으로부터 들은 얘기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김 대표는 이를 부인.
그는 『비서관(최 수석)과 무슨 특별한 얘기를 많이 했겠느냐』고 해 이전에 결심이 대충 섰음을 시사.
김 대표의 회견내용이 전해지자 상당수 민주계 의원들은 『이제 제대로 돼간다』고 환영. 민주계의 중진과 초ㆍ재선 의원들은 이날 아침 별도의 단합모임을 가졌었다.
○…김 대표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민정계의 핵심의원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오히려 잘됐다는 분위기.
김진재 총재비서실장은 『노 대통령은 최악의 사태를 각오하고 있는 것 같더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했고,또다른 한 중진의원은 『일반사회에서 잘못된 결혼이 확인되면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다』며 분당론까지 거론.
이날 오전 민주계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당무회의가 끝난 뒤 이종찬 의원은 『할말이 있으면 당내에서 해야 할 것 아니야』 『밖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무슨 처사냐』며 김 대표의 독자적 기자회견을 강력히 비난했고 또다른 한 중진의원은 『회의 분위기가 오히려 좋았다』 『이제는 방을 넓게 터도 되겠다』라며 회의 분위기를 전달.
○…31일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김영삼 대표는 2층 서재로 올라가 2시간 가량 계파 의원들과 만난 뒤 10시20분쯤 마산으로 출발하기 위해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집을 나섰다.
김 대표는 현관을 나서면서 보도진들이 모여들자 『이제 그만 됐습니다』라는 말뿐 일체의 질문에 함구했는데 비교적 어두운 표정.
김 대표는 이어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원외지구당위원장과 사무처 요원들을 발견하고 『다들 오셨구만』이라며 인사를 건네고 일일이 악수를 나눴는데 한 열성 여성당원이 『총재님,통일이 될 때까지 힘내세요』라며 소리치자 가벼운 웃음을 띠며 답례.
이같은 열띤 분위기에 김 대표는 약간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는데 김 대표가 차를 타고 출발하자 대문 밖에 몰려 있던 50여 명의 당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김 대표를 전송.
김 대표는 마산에 있는 본가에서 머물 예정인데,부인 손 여사와 수행비서 1명만 대동.
김 대표는 마산에 얼마만큼 머물 것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회피했는데 김 대표를 만난 강보성 의원은 『각오가 단단한 것 같더라』면서도 『그러나 오래는 걸리지 않을 것 같다』고 설명.<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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