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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서초 주민도 골아프다…尹-文 사저 앞 '욕설 시위' 대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 등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윤석열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시위 비호 행위 규탄 및 배우자 구속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 등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윤석열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시위 비호 행위 규탄 및 배우자 구속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일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이름과 문재인 전 대통령 이름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구속” “씨X(욕설)” 등 들려오는 단어는 거침이 없었다. 보수·진보 진영으로 나뉜 수십 명의 시위대는 서울 도심의 인도를 각각 점령하고 집회로 맞붙은 모습이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집 앞 맞불 집회 

14일 서울의소리 측이 연 집회 모습. 사진 채혜선 기자

14일 서울의소리 측이 연 집회 모습. 사진 채혜선 기자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로 알려진 ‘서울의소리’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사는 서초 아크로비스타 맞은편 서울회생법원 정문 30m 주변에서 ‘문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시위 비호 행위 규탄’ 등 집회를 했다. 지난달 10일 이후 문 전 대통령이 사는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고성·욕설 등이 섞인 집회에 항의하는 ‘맞불 집회’라는 게 이들 설명이다. 전·현직 대통령 집 앞에서 상대 진영 지지자들이 집회로 맞대결을 벌이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백의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국민 갈등을 해소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테러에 준하는 욕설 소음 시위를 옹호·방조하는 발언을 해 국민 간 대립과 갈등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서울회생법원 근처에는 “윤석열·김건희는 양산 주민 괴롭히는 욕설 패륜 집회 중단하라” 등과 같은 현수막 9개가 걸렸다.

20여 명이 참석한 이날 집회에서 서울의소리 측은 꽹과리 등을 울리며 “패륜 집회를 비호하는 윤석열은 사과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문 전 대통령 사저 근처에서 “갈 곳은 감옥뿐” 등을 외치며 진행되는 욕설 시위 소리를 대형 확성기로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다. 백 대표는 “양산은 초가집이 대부분이라 문을 닫아도 소리가 들리지만, 아크로비스타는 (최신식이라) 방음이 잘 된다”며 “양산보다는 아크로비스타 주민들이 불편이 작을 것”이라고 했다.

“골 아프다” 주민들 고통 호소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 등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윤석열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시위 비호 행위 규탄 및 배우자 구속 촉구 집회를 진행 중인 가운데 윤 대통령 팬클럽 열지대 회원들이 맞불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 등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윤석열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시위 비호 행위 규탄 및 배우자 구속 촉구 집회를 진행 중인 가운데 윤 대통령 팬클럽 열지대 회원들이 맞불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의소리 시위대 근처에선 보수성향 단체 ‘신자유연대’ 등 20여명이 집회를 열었다. 신자유연대 측이 확성기가 달린 차를 몰고 서울의소리 쪽으로 접근하면서 양쪽이 쏟아내는 고성으로 ‘전투’를 벌이는 듯한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각 진영의 유튜버들은 스마트폰 카메라 등으로 서로를 ‘찍고 찍히는’ 모습도 보였다. 이를 보고 “기자라고 하는 애들만 100명이 넘겠네”라는 시민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맞불에 맞불 집회가 동시에 열리면서 발생한 소리가 현행법에 따른 주간 소음 기준(65㏈)을 넘어 경찰이 경고하는 일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기준치를 넘을 때마다 주최 측을 제지하고 있다”고 했다.

아크로비스타 주민 김모(79·여)씨는 “시골도 아니고 공부하는 학생이 많은 서초동에서 이런 집회가 열리다니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 골이 아파 밖으로 잠깐 나왔다”고 말했다. 길을 지나가던 50대 시민은 “상스러운 욕설이 계속 들려오는데 좋은 말이 나올 수 없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집회 대결’ 이대로 괜찮나

지난5월 25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 문 전 대통령 반대단체 집회, 1인 시위에 항의하는 마을주민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지난5월 25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 문 전 대통령 반대단체 집회, 1인 시위에 항의하는 마을주민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연합뉴스

서초동에서 직선거리로 300여 ㎞ 떨어진 경남 양산의 평산마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집 주변에서는 연일 장송곡이 틀어져 인근 주민이 소음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평산마을 집회 현장은 생중계 유튜브 영상 등으로 쉽게 확인된다.

마을 일대에서는 “문재인 XXX” “똥XX” 등 ‘지저분한 단어’들이 난무한다. 저승사자 복장을 한 시위대 등을 보는 마을 주민들은 불편한 감정을 넘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문 전 대통령도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반지성”이라며 공개 비판을 했다.

집회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가정집 앞에서 모욕과 욕설이 난무하는 집회 현장. 이런 명분과 현실의 괴리에 의문을 나타내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오로지 정치적 세 대결을 목적으로 한 위력 과시형 시위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집회의 자유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집회·시위가 정치적 보복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오히려 상대방의 자유를 제한하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주민 평온이라는 기본권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획일적인 규제로 처리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압박이 필요하다”면서 “집회 관리의 개념으로, 집회를 최대한 보장하되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소음 기준 등을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사회적 정치적 소수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거고 그걸 최대한으로 보장하자는 건데, 현재 상황을 보면 그런 부분이 전혀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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