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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경찰국 추진에…경찰 내부선 "통제가 독배 될 것" 반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가칭)’ 신설이 논의되면서 정치권과 경찰 내부에서 미묘한 마찰음이 나고 있다. 특히 대통령령 등 시행령 개정이 논의되면서 야권이 반발하고 경찰 일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행안부는 정부조직법 개정 등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보이며 강한 추진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방문해 김창룡 경찰청장의 안내를 받아 이동하고 있다.  이날 이 장관은 김창룡 경찰청장과 면담을 나눴다. 뉴스1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방문해 김창룡 경찰청장의 안내를 받아 이동하고 있다. 이날 이 장관은 김창룡 경찰청장과 면담을 나눴다. 뉴스1

대통령령 개정만으로 경찰국 도입? 

앞서 행안부 장관 직속 경찰 제도개선자문위원회는 지난 10일까지 총 4차례 회의를 마치고 비공식 직제인 치안정책관실을 공식 조직으로 격상하는 안을 건의하기로 결론냈다. 새 조직의 이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칭 경찰국의 형태로 격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13일 “자문위 권고안이 그대로 수용될지 미정”이라면서도 “만약 추진한다면 직급에 따라 국장급 이상이면 대통령령 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무회의를 통과해야 하고, 과장급 이하면 시행규칙 개정만으로도 신설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최근 논란이 됐던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이 대통령령과 법무부 직제 개정안 통과를 거쳐 지난 7일 출범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경찰국 조직이 신설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경찰 일각에서는 행안부의 경찰력 ‘통제’ 의도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통제는 곧 책임으로 귀결된다”며 “잘못하면 ‘독배’를 드는 것일 수도 있다”고 반발했다.

행안부, “법에 있는 권한 공식화 하는 것”

치안정책관실은 경찰청의 비공식 파견 조직 형태로 행안부 장관의 경찰 고위직 인사 업무를 보좌하고 있다. 치안정책관실에서 격상되는 조직 역시 경찰공무원법 제7조에 명시된 행안부 장관의 총경 이상의 고위직 인사 제청권 행사 등이 주요 업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선 치안정책관실이 경찰국으로 격상될 경우, 인사·예산·감찰 등의 권한을 갖고 경찰 전반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치안정책관실 격상이 ‘법무부 검찰국’과 유사한 조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법무부는 검사 전체에 대한 권한이 있지만, 행안부는 총경 이상에 대한 제청권만 있다. 명칭과 규모, 어디까지 업무를 볼지, 그 업무량이 국장급 정도가 될지가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행령 개정을 통한 경찰국 신설 방안에 대해 야권에서는 정부조직법 등 법 개정 사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행정안전부 권한에 대해서는 정부조직법 또는 경찰청법에 명시가 되어 있다”며 “법을 개정하지 않고 행정안전부 장관, 행정안전부가 권한을 확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자문위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경찰의 권한이 늘어난 것으로 국민은 인식하고 있는데 경찰에 대한 관리는 누가 어떻게 할 건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경찰 자체적으로도 권한 남용의 소지는 없애는 것이 좋다. 행안부에 있던 경찰 관련 조직을 공식화시키자는 차원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안정감 면담에 이어 또 ‘길들이기’ 논란

경찰국 신설 논의는 행안부 장관의 인사 제청권 실질화와도 맞물려있다. 앞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최근 치안정감 승진자 6명을 개별 면담한 데 이어 경찰청을 방문해 “(차기 경찰청장 후보들 면접도) 필요하다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해 ‘경찰 길들이기’ 논란이 제기됐다.

경찰 내부에선 이를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이후 경찰권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일선의 한 경찰은 “면접을 통해서 후보자의 자질이나 주관이 쉽게 평가되겠나. 솔직히 면접이란 형식을 통해서 충성심 줄 세우기밖에 안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장 장관급 격상이나 경찰관 처우 관련 공약은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통제만 강화되는 분위기에 일선 경찰관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소위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실세 장관이 경찰권을 통제하는 게 민주적 통제인가. 정권에서 통제하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물론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조직의 공식 직제화 논의에 찬성하는 분위기도 있다. 일선의 경찰 간부는 “청와대가 아닌 행안부 내 공식 기구를 통해 제청권을 실질화하겠다는 것으로 안다. 그걸 경찰 치안 사무에까지 개입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김창룡 경찰청장(왼쪽)과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 1월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선거사범 수사 상황실 현판을 제막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창룡 경찰청장(왼쪽)과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 1월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선거사범 수사 상황실 현판을 제막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수본부장 “논의 진행중…어떻게 결론날 지 몰라”

경찰 지휘부는 말을 아끼고 있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고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인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일선 직원들은 최근에 보도를 통해 관련 상황을 접하면서 현장 직원들 자긍심, 자존심 문제와 연관 있다고 보고 의견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 출범 초기 단계니까 새 권력의 의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한번 지켜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며 “제청권 실질화를 거쳐 임명이 되고 시행령도 바꿔서 해봤지만, 결과가 나쁘다면 나중에 가서 문제라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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