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순간에도, 분란의 위기에도 중심에는 늘 그가 있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오는 11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객관적 지표로만 보면 국민의힘은 이 대표 체제에서 줄곧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최연소 제1야당 대표의 등장에 노쇠한 보수 정당의 이미지를 일정 부분 벗었고, 대선과 지방선거 모두 승리했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2일 한국갤럽 조사 기준 45%로 더불어민주당(32%)보다 13%포인트 앞섰다.(※자세한 수치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등 참고)
이쯤 되면 “역대급 당 대표”라는 찬사가 쏟아질 것 같지만, 정치는 숫자로만 설명될 수 없다. 여당 내에는 이 대표를 곱게 보지 않는 시선이 상당하다. 친윤 그룹에 속한 의원은 “대선에서 이 대표가 외려 마이너스로 작용했다고 보는 캠프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보수 정당 수장으로서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보다는, 분란을 찾아다니며 존재감을 부각했다고 박하게 평가하는 인사들도 꽤 있다.
따릉이 타고 토론배틀 파격…대선, 지선 2연승
이 대표는 지난해 6월 11일 20·30대 남성 팬덤을 등에 업고 국민의힘 초대 대표로 선출됐다. 단순히 젊은 남성만 이 대표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여론조사를 크게 이겼고, 당원투표에서도 37.4%의 득표율로 나경원 전 의원(40.9%)과 격차가 크지 않았다. 대선을 앞두고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 당원들이 쟁쟁한 중진 대신 젊은 피에 힘을 싣는 전략적 투표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대표의 임기 초 키워드는 ‘파격’이었다. 공공 자전거인 따릉이를 타고 국회로 처음 출근하고, ‘토론배틀’을 통해 대변인단을 선발하는 등 이색 행보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를 실시하고, 대선 과정에서 59초 분량의 ‘쇼츠 영상’과 ‘AI 윤석열’을 기획해 두각을 나타냈다. 지방선거 막판에는 이재명 민주당 의원의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등 이슈 파이터의 면모도 과시했다.
이 대표의 논쟁적인 행보 속에 당원은 증가했고, 호남 표심도 반응했다. 이 대표 취임 전 국민의힘 당원은 약 20만명 수준이었는데, 현재 80만명에 달한다. 특히 이 대표는 대선 당시 호남 지역 200만 가구에 윤석열 후보의 손편지를 전달하고, 지방선거 때는 광주 지역 구의원 후보의 현수막이 훼손되자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수습하는 등 구애를 폈다. 그 결과 전남·전북·광주에서 시·도지사 후보들이 처음으로 15% 이상을 득표하는 성과를 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이 껄끄러워하고, 대선과 지방선거 2연승을 이끈 당 대표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내 분란 중심”…당 밖에선 민감 이슈 참전
하지만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논란도 만만치 않았다.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내 분란이 발생했을 때 열에 아홉은 이준석 대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 대표는 당 대표 취임 2달 만인 지난해 8월 원희룡 대선 경선 후보와 통화 녹취록 공방을 벌였다. “저거 곧 정리된다”는 이 대표의 발언을 두고 원 후보는 “윤석열 후보가 정리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고, 이 대표는 녹취록을 공개하며 “갈등이 정리된다는 뜻”이라고 받아쳤다.
윤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인 지난해 11월 30일에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을 공개 저격하며 당무 거부에 나섰다. 당시 이 대표는 윤 후보의 측근인 장제원 의원의 부산 사무실을 방문해 인증샷을 찍으며 도발하기도 했다. 결국 윤 후보가 울산으로 내려가 이른바 ‘울산회동’ 성사로 갈등을 봉합하긴 했지만, 당내에선 “일시적 봉합”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실제 이 대표는 3주도 안 돼 선대위의 모든 직을 내려놓겠다고 돌발 선언했고, 추경호 당시 원내수석(현 경제부총리)이 대표 사퇴를 결의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윤 후보가 의총장에 깜짝 등장해 이 대표와 포옹하며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친윤계 인사들과 이 대표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는 껄끄러운 관계인 안철수 후보 측과 연일 설전을 벌이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안 후보 측 관계자는 “이 대표의 모욕적 발언이 막판까지 단일화를 가로막았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최근에는 친윤 그룹의 맏형격인 정진석 의원과 우크라이나 방문, 지방선거 공천 문제 등을 두고 격한 설전을 벌였다.
이 대표는 당내뿐 아니라 당 밖에서도 각종 민감한 이슈에 참전하며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역풍도 따라붙었다. 젠더갈등 국면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앞세워 ‘이대남’(20대 남성)의 지지를 끌어냈지만, 20·30대 여성들의 반감을 사 양날의 검으로 돌아왔다. 대선 뒤 이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정면 비판한 것을 놓고도 반응이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 문제에 총대를 멨다”(당 관계자)는 긍정적 평가가 있었지만 “사회 갈등과 약자의 문제를 진중하게 짚어야 할 여당 대표가 아니라, 일회성 이슈를 쫓아다니는 평론가 같다”(당 중진의원)는 부정적 평가도 상당했다.
임기가 1년 남은 이 대표는 최근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8일 방송 인터뷰에서는 “두 번의 선거에서 이겼는데 내려오라는 사람들은 정말 어이없다”고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성 상납 의혹’을 다루는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심사가 24일 전후로 판가름나는 데다가, 당내 주류로 떠오른 친윤 그룹과의 균열이 다시 한번 노출됐기 때문에 이 대표의 입지가 그리 단단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과거 보수 정당의 대표가 주로 관리형이거나 보스형이었던 것과 달리, 이 대표는 환호와 야유를 동시에 끌어내는 독특한 캐릭터”라며 “혁신위원회의 공천 시스템 개혁을 놓고 불거질 당내 갈등이 이 대표 앞에 놓인 진짜 시험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