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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얼마든지 권력자 비판할 자유 있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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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 사람들을 보면 뻔뻔해도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된다면 납득할 수 없는 비판, 비난도 참을 수 있나?) 참아야죠. 뭐.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죠” “(어떤 비난·비판에도 절대 고소·고발하지 않는다고 약속해달라) 권력자를 비판함으로써 국민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방송(2017년 2월 9일 JTBC ‘썰전’)에서 이렇게 국민에 약속했던 문 전 대통령은 최근 사저 앞에서 시위하는 국민을 대리인을 통해 모욕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뿐인가. ‘드루킹’ 댓글 조작 공모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문 전 대통령 측근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사람은 가둘지언정 진실은 가둘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한다. (부인 김정순씨 SNS 전언) ‘불합리한 사법제도는 어떻게 김경수에 유죄판결을 내렸나’란 부제가 달린 『김경수, 댓글조작, 뒤집힌 진실』이란 책도 나온단다. 기가 막힌다.

시위 옹호 문, 사저앞 시위 고소
댓글공작 김경수도 유죄 ‘불복’
고소 앞서 ‘내로남불’ 반성하길

김 전 지사의 죄는 ‘역대 최고의 친정권(문재인 정부) 사법부’란 비난을 받아온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법원이 내린 것이다. ‘김명수 사법부’는 1심부터 3심까지 일관되게 김 전 지사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유죄를 확정한 대법원 2부 주심 이동원 대법관은 2018년 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법관에 오른 판사다. ‘적폐판결’이라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데도 두 눈 부릅뜨고 불복하는 모양새다.

문 전 대통령은 김 전 지사를 “인간적으로 형제 같고 정치적으로 가장 든든한 동지”(2014년 3월)라 표현했다. 이 정도면 측근이 아니라 피붙이 아닌가. 따라서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피붙이가 대통령직의 정통성마저 뒤흔들 중대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했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 ‘문고리 3인방’이 댓글 공작 관여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면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 드러누웠을 것이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김 전 지사의 유죄 확정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그의 사면을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에 엮어 끼워팔기식으로 추진하다가 여론을 의식해 접었다는 의심마저 받고 있다.

김 전 지사의 유죄 확정은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 시절 야당으로서 거둔 거의 유일한 성과였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김성태 전 의원이 단식 등 극한 투쟁 끝에 특검을 성사시켰다. 또 특검을 맡은 허익범 변호사가 밤을 새워가며 죄상을 추적해 유죄를 끌어냈다. 김 전 원내대표의 회고다.

“드루킹 일당의 상층부에 있다 좌천된 사람의 제보가 실마리였다. 사안이 중대해 그 제보원을 만날 때면 차량 통행이 뜸한 지방 도시 공영주차장을 이용했다. 제보원이 알려준 정보를 내가 연일 폭로하면서 국민 관심이 급증하자 제보원은 ‘더 결정적인 고급정보가 내 휴대전화에 있다’며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 ‘드루킹이 김 전 지사를 넘어 최고 ‘윗선’과 접촉해 댓글 공작을 했다’는 게 그 고급정보의 요지로 보였다.”

김 전 원내대표는 “제보를 돈으로 사는 건 불법이라 단칼에 거절했지만 이런 얘기가 제보원 입에서 흘러나온 걸 보면 드루킹이 권력의 최정점까지 접촉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추가 수사로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7월 SNS에서 똑같이 추가 수사 필요성을 제기한 게 눈에 띈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장에서) 김정숙 여사가 ‘경인선(드루킹 주도 친문조직)에 가자’고 직접 말하는 화면들이 남아 있고, 고위공직인 총영사 자리가 흥정하듯 거래된 게 드러난 상황이다. …문 대통령 본인이 여론조작을 지시하거나 관여했을 거라는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본인 모르게 ‘키다리 아저씨’가 여론조작을 해 줬다는 말인가.”

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측근 최순실씨를 비선으로 쓰며 국정을 농단한 혐의로 탄핵당하면서 대통령이 됐다. 정작 본인은 아들의 공공지원금 수령 논란, 사위의 타이이스타 취업 특혜 의혹 등 측근을 넘어 가족들에 제기된 스캔들마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청와대에 입장을 물으면 “가족에 대해선 언급 않는 게 원칙”이란 해괴한 답변만 돌아왔다.

욕설 시위는 분명히 문제다. 반대한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에 욕설 시위대가 진을 쳤을 때 말리는 시늉조차 한 적이 없다. 그래놓고 자신의 사저 앞에서 시위하는 국민은 바로 고소했다. 퇴임 후에도 ‘내로남불’이 작열한다는 비아냥이 과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