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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손 들어준 중국, 미국·서방의 제재 부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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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 방문학자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 방문학자

중국은 결국 러시아에 대한 지원 때문에 미국과 서방의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를 지지할 경우 그에 따른 “후과(consequences)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이후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은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악화일로의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국내적으로는 일관되게 러시아를 지지하고, 국제적으론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는 걸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반면 미 정부는 중국이 러시아에 대해 독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보고, 중국 스스로 부여한 ‘책임 있는 대국(負責任的大國)’이란 위상에 걸맞게 서방에 합류하거나 아니면 ‘중재자’로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라고 촉구 중이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시진핑이 세계 무대에서 진정한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크라이나와 미국 편을 들 것”이라며 “시진핑이 올바른 선택(the right choice)을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북핵 중재 때 북한 의심 산 중국
러시아 침공 비난은 한사코 거부
미 제재 피하려 대러 제재 시늉만
미·러 사이 딜레마 빠져 고민 중

사회주의 아군에 대한 자살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금지구역 없는 중·러 협력’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금지구역 없는 중·러 협력’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를 소외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중국이 동조한다는 건 같은 사회주의 아군을 약화하는 ‘전략적 자살골’이라고 본다. 어차피 러시아 다음 미국의 타깃은 중국이 되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중국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경험을 토대로 이 같은 ‘교훈’을 배웠다. 당시 북한은 동맹인 중국이 미국 편을 들고 있다고 의심하면서 중국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중·러 간 ‘금지구역이 없는 협력’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는 중·러가 미국 및 서방과 장기간 냉전적 대결을 펼치겠다고 예고한 것과 다름없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건 같은 사회주의 진영인 러시아 시각에서 볼 때 오해를 살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중국이 러시아를 위해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순간이다.

경제 규모가 중국의 10분의 1에 불과한 러시아에 비해 중국은 미국 및 유럽연합과 훨씬 더 큰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중국이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만약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서방이 중국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문턱을 넘게 된다. 그러잖아도 껄끄러운 미국 및 서방과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지 말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중국 관세청에 따르면 중국은 서방의 대러 제재에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 지난 3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10% 이상 줄였다. 중국이 지난 3월 러시아에서 수입한 원유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1%나 감소해 전체 수입량의 15.0%에 그쳤다. 이에 따라 중국의 최대 석유 수입국도 러시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16.1%)로 바뀌었다. 일각에선 이런 제스처를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한다.

친강(秦剛) 주미 중국대사의 언론 인터뷰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친강은 “중국과 러시아 간 협력에 금지구역은 없지만, 마지노선은 존재한다(中俄合作沒有禁區但有底線)”고 말했다. 그러나 이게 중국이 국제적인 공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결정적 신호는 아니다. 그보다는 중국이 잘 활용하는 외교적 선전 전술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큰소리만 치고 실천은 안 해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항구를 지키고 있는 러시아 군인들 모습. [EPA=연합뉴스]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항구를 지키고 있는 러시아 군인들 모습. [EPA=연합뉴스]

앞서 언급한 북한 사례에서 중국 정부는 당시 대북 수출이 금지된 이중 용도(dual use) 품목 및 기술 목록을 무려 236쪽 분량으로 발표했다. (2013년 9월) 당시 중국의 이러한 제스처는 중국이 국제적인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됐다. “중국이 말 아닌 행동으로 대북제재에 나섰다”고 한국 언론은 찬사를 보냈다. 외교부 당국자도 “중국이 그동안 자국 기업들에 안보리 결의안을 잘 이행하라고 구두로 독려한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강한 이행 의지를 담은 정부 공고문을 발표하고 또 구체적 목록까지 세세하게 공개한 적은 없었다”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훗날 미국이 중국에 관련 대북 제재를 어떻게 이행했는지 문의했을 때 중국은 관련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천둥소리만 크고 빗방울은 가늘다(雷聲大雨點小)’는 말처럼 큰소리만 치고 실행은 시늉만 냈던 셈이다. 허장성세 전술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제재 행동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패턴이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한 2013년 당시에도 중국의 4대 국영은행 가운데 하나인 중국은행은 북한 조선무역은행과의 거래를 중단했다고 발표했고 당시 이 놀라운 소식은 외신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실제로 이뤄진 일은 거의 없었다. 전문가들이 중국의 대북정책을 보여주기식 ‘전술적 수준’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보이는 중국의 태도는 중국의 대북 제재 당시 행태와 유사하다. 중국 최대의 국영 석유화학기업 시노펙이 러시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하는 뉴스가 나오거나 차량공유기업 디디추싱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중단한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방은 중국의 이런 조치에 일련의 희망을 품고 중국을 제재하려던 생각을 접는 등 정보 혼란을 겪는다. 디디추싱은 후에 관련 뉴스를 부인했다.

미국과 서방이 중국에 대한 심각한 제재를 고려할 경우 중국은 자국의 외교 전술에 따라 이를 막으려는 조치를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합리적 우려는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하자 드미트로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선 “몹시 애석하다(痛惜)”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 줄타기

중국은 향후 서방과 러시아, 양쪽 모두와의 관계를 크게 해치지 않는 모호한 줄타기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론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의식한 ‘친(親)러시아’ 노선을 선택할 것이다. 왕이는 지난 3월 “국제 정세가 아무리 악화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포괄적·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끊임없이 전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북·중우호관계가 “일시적인 일로 인해 변하지 않아야 한다(不應也不會因一时一事而變化)”고 천명한 것과 유사하다.

일부 관측통은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과장됐다고 일축한다. 시진핑과 푸틴이 공유하는 건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이란 것이다. 이 같은 시각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위기는 중국과 러시아 간 소위 ‘무한한 우정(沒有止境的友好)’을 시험하는 계기가 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 내부에서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재평가의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전자는 ‘공동의 적’을 갖는 게 주는 통합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고, 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어느 쪽에 더 유리한가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①푸틴의 전쟁을 막지 못한 점, ②우크라이나에 미군을 직접 파병하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은 점 등 이른바 ‘유약한 리더십’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미국에 전략적으로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다.

첫째, 미국이 가장 우려한 것은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하지만 군대를 직접 파견하지는 않음으로써 미군 병력을 여전히 인·태 지역에 유지할 수 있었고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중국의 ‘오판’을 막았다.

둘째, 미국이 중국 하나만 상대하기보다 중국과 러시아를 한꺼번에 상대하기가 더 쉽다는 ‘역발상’이 대두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할 때, 국제사회는 그것이 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단결하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중국을 ‘멀리 떨어진 위협’으로만 간주했던 유럽이 미국과 인식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됐다.

셋째, 동맹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푸틴이 영토 야욕을 채우기 위해 기꺼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목도한 국제사회는 시진핑의 대만 침공 가능성도 ‘설마’가 아닌 실존적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집권 때 상당한 부침을 겪었던 미국의 동맹 체제가 다시 결속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동맹의 협력 폭과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된 것도 국제정치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성현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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