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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원의 이코노믹스

저성장 시대의 생존법, 갈대의 유연성을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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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왜 지금 회복탄력성인가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는 2020년 4월까지 급격하게 위축됐으나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강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오히려 세계적인 공급 부족 사태를 촉발했다. 반면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예상보다 훨씬 부진한 회복을 보임으로써 2016년까지 장기침체를 이어갔다. 이러한 두 번의 세계 경제위기에서 나타난 회복 양상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21년 최고 경제학 서적으로 선정한 『The Resilient Society(회복사회)』를 저술한 마커스 브런너마이어(Markus J Brunnermeier) 프린스턴대 교수의 해석을 참고할 만하다. 그는 국가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테마로 한 이 책에서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세계 경제의 빠른 회복은 팬데믹이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라는 혁신의 회복탄력성을 촉진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특히 브런너마이어 교수는 “회복탄력성은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밝히는 북극성과 같은 지향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핵심 개념으로 회복탄력성이 주목된다.

팬데믹·전쟁·인플레 충격 잇따라
시장 내부의 회복력이 핵심변수

갈대는 참나무보다 바람에 강해
경제적 자유와 신축성 키워가야

코로나 위기 속 디지털 전환 가속
한국의 글로벌 생산기지 길 열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키워드

회복탄력성은 심리학에서 충격을 받기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힘을 의미하며, 거시경제적으로는 충격 이전의 장기적 성장 추세로 복귀할 수 있는 총체적 역량을 말한다. 갈대와 참나무를 비교해 보면 회복탄력성과 그 대칭 개념인 굳건함(robustness)의 차이가 드러난다. 즉 참나무는 어지간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건하지만, 강풍이 몰아치면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힌다. 반면에 갈대는 약한 바람에도 쓸릴 듯 휘청거리지만, 강풍이 몰아쳐도 지나고 나면 그뿐 다시 제 모습을 회복한다. 즉 참나무는 충격에 대하여 버티는 힘이 강했지만 충격을 흡수하고 원상을 회복하는 힘이 없다. 반면에 갈대는 충격을 견디는 힘은 약하지만, 충격을 흡수함으로써 충격 후 본래 상태를 회복하는 역량이 뛰어나다.

〈그림1〉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림1〉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림 2〉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림 2〉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특히 회복탄력성이 없는 경제는 충격이 멈춘 후에도 충격의 상처가 지속하여 충격 이전의 궤도로 돌아가지 않는다(〈그림 1〉의 왼편 그림). 자칫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의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 반면에 회복탄력성이 작용하는 경제는 충격이 멈추면, 빠르게 충격의 상처를 치유하고 충격 이전의 궤도로 복귀한다(〈그림 1〉의 오른편 그림). 한편 회복탄력성에 따라 경제의 장기성장 궤도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림 2〉에서 위쪽 궤도는 변동성은 크지만 강한 회복탄력성으로 충격 이전보다 더 높은 성장 추세를 지속하는 역동적인 경제를 보여주지만 아래쪽 괘도는 회복탄력성이 작용하지 않고 충격의 상처가 지속함에 따라 장기 저성장 추세를 지속하는 경제를 시사하고 있다.

스페인 독감 이후의 경제 회복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은 무엇이 결정하는가? 외생적 충격으로부터의 경제 회복에 대한 연구 결과는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첫째, 1918년 스페인 독감의 경우 1918년 7월부터 1919년 3월 사이 미국의 산업생산은 전년 동기대비 16~25% 감소했으나, 1919년 3월부터 1920년 1월 사이에는 22~25%의 급속한 회복을 보였다. 즉 스페인 독감의 사례는 인구 감소로 인한 장기적 잠재적 경제손실은 불가피하지만, 팬데믹이 장기적 경제성장을 어렵게 할 만큼 절대적 충격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 이유는 회복탄력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둘째, 충격 이후 경제회복 속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1993년부터 2010년 사이에 발생한 175개국의 212건의 경제위기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와 제도적 신축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상대적으로 위기의 충격을 적게 받았던 한편, 회복 속도도 빨랐다. 즉 충격 후 경제회복은 그 경제에 내재하는 회복탄력성에 의해 결정된다.

창조적 파괴 거쳐야 혁신 확대

회복탄력성은, 정부·시장·사회적 규범, 이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작용한다. 정부의 역할은 충격을 극복하는 데 중요하지만, 정부의 시장 개입은 개인과 기업의 창의적인 혁신을 어렵게 함으로써 회복탄력성의 육성을 저해한다. 특히 금융시장은 혁신이 성공이냐 실패냐에 따라 다른 보상체계를 적용하므로 회복탄력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팬데믹 기간 중 마스크 착용에 대해 동양과 서양 사회는 사회적 규범의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이 차이는 방역 성과의 차이로 나타나 사회적 규범이 회복탄력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임을 보였다.

한편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방법으로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작은 충격이나 실패로부터 대응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와 대만은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를 통해 국제적 전염병에 대한 국가 비상계획 운영을 경험한 바 있어 이번 코로나 사태 대응에 큰 도움에 되었다. 기업들은 연구개발이나 인수합병 등 사업의 실패 경험으로부터 제대로 된 교훈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바로 실패의 경험이 기업의 회복탄력성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은 화재 발생 경우의 스프링클러처럼 충격 다음에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과정을 통해 시스템을 새롭게 함으로써 작용한다. 충격으로 인해 기존 시스템은 이미 더는 유지할 수 없으므로 창조적 파괴를 단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기존 시스템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혁신적인 대안으로 바꿈으로써 회복탄력성을 확보할 수 있다. 개인의 일상회복에도 같은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혁신 너무 빠르면 부작용도 초래

혁신을 통한 회복탄력성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혁신은 그 자체가 또 다른 문제를 수반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세계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규제는 생활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함으로써 반도체 부족 등 생산 역량이 비신축적인 공급사슬의 압력을 높인 결과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했다. 한편 시장기능을 통해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대안을 가진 개인이나 기업이 투자 위험을 감수하도록 정부와 사회가 위험을 분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정부와 사회가 혁신의 위험에 대한 분담을 기피한다면, 회복탄력성은 작용하기 어렵고, 따라서 충격이 멈춘 후 경제는 저혁신·저변동·저성장 경제로 침체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진취적인 개인과 기업의 위험 수취에 대한 보상을 과도하게 높은 시스템을 운용하는 경우, 승자독식을 가져옴으로써 혁신 선도자와 일반 대중 간의 양극화를 초래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혁신의 속도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도 국민은 혁신에 저항함으로써 회복탄력성의 작용하기 어렵게 한다. 이러한 혁신 자체가 내포한 문제들이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선을 넘는 경우, 그 반작용으로 회복탄력성은 작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가 강한 회복탄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유인과 사회가 수용 가능한 혁신의 위험 간에 적절한 균형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규제 대폭 철폐해야 기회 있어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우리는 위기의 정점에서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고 언급했듯이 현재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전쟁, 40년만 최악의 인플레이션 충격을 맞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각국 경제에 내재한 회복탄력성의 작용 여하가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결정하는 데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의 지정학적 판도가 불확실해지고, 세계 공급사슬의 재편이 추진됨에 따라 모든 국가가 공히 전략적 전환점에 직면해 있다.

이 전략적 전환의 경쟁에서 승자가 되는 길은 바로 회복탄력성에 달려 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최선의 대책은 개인과 기업의 혁신과 창의를 촉진하도록 규제를 최소화하고 위험을 분담하는 것이다. 제조 역량이 뛰어난 우리나라는 세계 공급사슬의 재편 과정에서 국제적 적합성이 낮은 규제를 대폭 철폐함으로써 생산의 안전성과 효율성이 높은 글로벌 생산기지로 혁신할 기회를 맞고 있다. 회복탄력성 개념은 규제 개혁을 통한 한국 경제의 역동성 확보가 재도약을 위한 최선의 해답임을 시사한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