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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정치적 올바름’과 콘텐트 기업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91호 31면

이창균 경제부문 기자

이창균 경제부문 기자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취재한 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 때 이후 처음이다(본지 5월 28~29일자 2면). 발단은 4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트위터에 “깨어 있는 마음(woke mind) 바이러스가 넷플릭스를 볼 수 없게 만들고 있다”고 써서 30만 명이 동의한 일이었다. 머스크의 말은 한 귀로 흘릴 수 있지만 30만은 작은 숫자가 아니다. 왜 이 많은 사람이 눈을 돌린다는 걸까. 모든 표현에서 인종·성 차별 등의 편견을 배제하자는 게 PC다.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PC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그걸 담는 작품의 질과 공급 방식이 아쉽다. 언제부턴가 재미·감동보다 사상 주입을 위해 만든 것 같은 주객전도의 작품만 과도하게 많다.” 쉬는 시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보고 싶은데 자꾸 교육을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예컨대 넷플릭스는 작품마다 유색인종과 성소수자를 꼭 등장시키는데, 좋은 취지인 건 알겠지만 작품의 배경이나 플롯을 고려 안 해 몰입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 . [AP=연합뉴스]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 . [AP=연합뉴스]

내년 개봉하는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역에 흑인 배우가 캐스팅돼 논란인 것도 관객 교육을 위한 작위적 원작 파괴로 보여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란 것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년)을 영화화하면서 엉클 톰 역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했어도 반응은 비슷했다는 설명이다. 사실 수년간 콘텐트 업계 안팎에서 이런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됐다. “PC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생각하지 않고 얼마나 옳은지에만 집착하고 있다.” 동성결혼한 영국의 작가 겸 배우 스티븐 프라이의 지적이다(『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2019년).

과거 콘텐트 기업들은 PC를 추구할 때 어디까지나 작품성을 우선시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메시지도 빛을 발한다. 그러려면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전달되도록 메시지를 녹여 내는 게 효과적이다. 이렇게 생산된 작품을 대중은 실제로 별 거부감 없이 수용했다. ‘슈렉’(2001년) ‘브로크백 마운틴’(2005년)부터 ‘주토피아’(2016년) ‘히든 피겨스’(2016년)까지 이들이 성 역할 고정관념이나 백인우월주의 타파, 성소수자에 대한 공감 등 PC를 추구했다고 혹평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재미·감동 속에 담긴 메시지에 큰 울림이 있었기에 어떤 하드파워보다 강력한 소프트파워로 기능했다. 넷플릭스의 과거 성공 비결 역시 PC를 추구하면서도 재미·감동은 놓치지 않은 콘텐트의 무한 공급이었다. 물론 넷플릭스는 지금도 인기작을 계속 배출하고 있다. 하지만 넘쳐난 글로벌 수요 감당을 위해 공급하는 콘텐트의 양을 과거 대비 폭발적으로 늘리다 보니 수적으로 품질 관리(QC)에 어려움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엔 작품 20개 중 5개가 뛰어나 호평받았다면 지금은 100개 중 10개가 괜찮아도 혹평받는 형국이다.

결국 해법은 작품성을 지금보다 더 많이 챙기는 것이다. 디즈니나 국내 콘텐트 기업도 마찬가지다. 허술한 각본·설정을 쉬운 사탕발림으로 때우는 데 급급한 제작진의 각성과, 옥석을 가려내는 기업 측의 안목이 필요하다. 온라인 영상 서비스(OTT)는 거실 TV로 이용하는 가정이 많아 공공재 성격도 지닌다. 과도한 묘사가 들어간 일부 콘텐트의 추천 기준 변경 등 공급 정책 개선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다시 마음 편히 소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한 곳으로 만드는 PC의 재도약을 위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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