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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중 1명 총 있는데 '난사' 없다...스위스가 美와 다른 '이것'

중앙일보

입력

김진경의 ‘호이, 채메’

2019년 9월 열린 취리히 크나벤쉬센(Knabenschiessen) 축제. 13~17세 청소년들이 라이플 사격 실력을 겨루는 사격장에는 누구든 들어가 구경할 수 있다. [사진 김진경]

2019년 9월 열린 취리히 크나벤쉬센(Knabenschiessen) 축제. 13~17세 청소년들이 라이플 사격 실력을 겨루는 사격장에는 누구든 들어가 구경할 수 있다. [사진 김진경]

크나벤쉬센(Knabenschiessen·소년 사격)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는 가장 중요한 축제 중 하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년이 시작되는 9월 초,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사흘간 취리히에 거주하는 13~17세의 학생들이 라이플 사격 실력을 겨룬다. 장소는 취리히 서부의 산자락 동네인 알비스귀틀리다. 참가 학생들이 과녁을 향해 총을 쏘면 ‘탕! 탕!’하는 소리가 온 숲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사격장 바깥에는 온갖 이동식 놀이기구와 음식 가판대들이 들어서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겨우 걸음마를 하는 아기들도 한 손에 솜사탕을 쥔 채 총소리를 들으며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취리히 ‘소년 사격’ 축제 사고 난 적 없어

역사적으로 크나벤쉬센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1656년이고, 지금의 형태로 매년 시합이 열리기 시작한 건 1899년이다. 취리히 라이플협회의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를 UBS 등 여러 스위스 은행들이 후원한다. 이름(Knaben, 소년)에서 알 수 있듯 원래는 남학생들만 참가할 수 있었다. 여학생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한 건 스위스 연방 탄생 700주년이던 1991년이다. 여학생들의 사격 실력은 남학생들을 웃도는 편이다. 2019년도 우승자(2020년과 2021년은 팬데믹으로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됐다)도 여학생으로, 만점인 35점을 얻어 1등 상금인 5000스위스프랑(약 655만원)을 받았다. 여학생이 참여한 지도 꽤 됐고 우승도 자주 하는데 왜 여전히 이름이 ‘소년 사격’인지에 대한 논쟁은 매년 되풀이된다. 성차별적 이름을 바꾸자는 쪽과 전통을 지키자는 쪽이 부딪친다.

그 논쟁을 지켜보는 나는 의아하다. 이 행사에 이름 말고 다른 이상한 점은 없는가. 스위스 최대 도시에서 열리는 주요 축제의 핵심 행사가 사춘기 청소년들의 총쏘기라니, 라이플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행사장에 누구든 제지 없이 입장할 수 있다니, 그러고도 사고 한 번 난 적이 없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2019년 5월 19일 실시된 ‘무기법’강화 관련 스위스 국민투표 포스터. 포스터에 ‘더 적은 총기, 더 적은 총기 범죄’라고 쓰여 있다.

2019년 5월 19일 실시된 ‘무기법’강화 관련 스위스 국민투표 포스터. 포스터에 ‘더 적은 총기, 더 적은 총기 범죄’라고 쓰여 있다.

총기에 관한 한 스위스는 좀 특이한 나라다. 서구의 이른바 ‘제1세계’ 국가 중 인구당 총기 보유 비율이 가장 높은 편이다. 인구 100명당 민간인 총기 보유량이 약 28정이다(스몰 암스 서베이, Small Arms Survey, 2018년). 4명 중 1명이 총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이 총기를 소유하는 것은 법적 기본권에 속한다. 그런데도 총기와 관련된 사건, 사고는 흔치 않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과 스위스가 비교 대상이 된다. 언론에서는 ‘미국이 스위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하고, 미국총기협회(NRA)에서는 ‘스위스처럼 미국도 추가 규제 없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이건 맞는 말일까. 대체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걸까. 총기 문제에 있어 스위스가 미국과 같은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일까.

첫째, 두 국가의 유사점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미국과 스위스는 정치적으로 연방제라는 점을 공유한다. 미국의 주(state)에 해당하는 것이 스위스의 칸톤(Canton)이고, 미국처럼 스위스도 칸톤별로 법이 다르다. 현재의 미국처럼, 예전에는 스위스의 26개 칸톤이 총기와 관련해 제각각의 법을 적용했다. 파편화된 규제는 스위스가 유럽에서 총기 규제가 가장 약한 곳이 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1999년 연방 정부에서 무기법(Weapon Act)이 통과되면서 양상이 바뀐다. 핵심 내용은 특정 총기를 금지하고 전국 어디서건 총기 구입 시 반드시 허가증을 제시하도록 한 것이다.

이 법에 의해 스위스에서는 민간인이 완전자동화기, 기관총, 유탄 발사기, 소음기 등을 구입할 수 없다. 피스톨, 리볼버, 반자동화기 등을 구입하려면 면허가 있어야 한다. 이 면허를 따려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8세 이상에, 자살 또는 살해 위험이 없음을 전문가 정신 감정으로 증명해야 하며, 범죄 기록도 없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총기를 구입하더라도 공공장소에서 들고 다니는 건 불법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총을 갖고 다니려면 또 다른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규제가 가장 약한 편에 속하는 것은 사냥이나 스포츠에 쓰이는 총기인데, 이런 총기도 운반 과정에서 총알을 분리하고 사용 직전에 장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알바니아 등 8개국 출신은 총 구입 불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초등학교 총격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초등학교 총격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총기 규제가 총기로 인한 사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많다. 스위스의 실제 통계 수치는 이를 뒷받침한다. 무기법이 막 통과된 1999년 당시 스위스에서 총기로 인한 사망은 392건(살해 46건, 자살 346건)이었다. 20년 후인 2019년 총기 사망 사건은 217건(살해 34건, 자살 183건)으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스위스 연방통계청 자료). 미국과 스위스는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한 연방제라 전국적으로 규제를 일괄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미국과 달리 스위스는 연방법이 통과되고 이미 20년 넘게 시행 중이라는 점이 다르다. 스위스에서 대규모 총기 사건이 발생했던 건 2001년(추크 지방 의회에서 총기범이 14명을 사살한 뒤 자살)이 마지막이다.

둘째, 총기 보유자가 주로 어떤 사람들인지 봐야 한다. 스위스에서 총기 보유가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하나, 여기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가 지정한 특정 국가 출신들이다. 알바니아, 알제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세르비아, 스리랑카, 터키 등 8개국 출신은 스위스에 거주하고 범죄 기록, 정신 감정 결과 등에 문제가 없다 해도 총기를 구입할 수 없다. 스위스 연방 경찰에 따르면 ‘이 국가들은 분쟁 지역이나 전쟁 중인 지역에 해당하고, 스위스에 살고 있는 이들 국가 출신들이 민족이나 정치적 이유로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출신지에서 스위스로 무기를 반입하려고 시도하는 일도 있다’는 게 이유다. 특정 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은 매우 논쟁적인 조치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라면 이런 제한을 두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스위스의 총기 보유 경로는 주로 군대와 관련되어 있다. 군 복무 중 지급 받은 총기를 집에 가지고 오는 경우, 또는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스위스 국방의 의무는 남성에게만 해당한다)이 자신이 쓰던 총기를 구입하는 경우다. 스위스의 오랜 전통인 민병대 대원들도 총기를 집에 보관할 수 있다. 이들은 군 입대 시 이미 정신감정을 받고(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전문적으로 총기 다루는 법을 익힌다. 미숙한 실수로 총기 사고를 내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들이 군에서 총을 가져올 때 총알은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추후 총알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스위스 법에 따라 총기와 총알은 안전하게 분리해 보관해야 한다. 주로 군을 통해 총기를 획득한다는 점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은 다음에 언급할 총기 보유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

셋째, 총기 보유 비율이 높은 건 공통적이라도 목적은 아예 다를 수 있다. 과거 미국 서부 도시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했고 현재 스위스에 거주 중인 정치학자 에린 짐머만은 두 나라를 비교하며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들에게 총기 소유는 ‘개인의 자유’지만 스위스인들에게는 ‘국가의 자유’다. 미국인이 총기를 소유하는 건 정부를 믿지 않아서이고 스위스인이 총기를 소유하는 건 정부를 믿어서다”(2018년 2월 스위스인포와의 인터뷰 중). 이는 설문조사 결과로도 뒷받침된다. 미국인 총기 보유자 중 74%가 ‘총기 보유가 개인의 자유에 필수적’이라고 응답했다(퓨리서치센터, 2017년). 치안이 좋은 편인 스위스에서 개인을 보호할 목적으로 총을 보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이 희생된 미국 텍사스주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후 스위스와 미국은 어김없이 비교 대상이 됐다. 미국이 스위스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나는 회의적이다. 스위스인들은 크나벤쉬센의 성차별적 요소를 지적하지만 이 축제에서 총기 범죄를 우려하지는 않는다. 크나벤쉬센 같은 축제가 미국에서 열릴 수 있을까.

김진경 스위스 거주 작가.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스페인 남자와 결혼해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한 뒤 한국과 스위스의 매체에 글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 『오래된 유럽』이 있다. 현재 취리히대학에서 인터넷 플랫폼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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