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유권자들이 본투표일까지 기다렸다가 투표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김모(28)씨는 “태어나서 해본 투표는 전부 사전투표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에 사는 그는 관내투표를 해본 적이 없다. 이번 지선에서도 지난 28일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서울에서 투표를 마쳤다.
남모(28)씨는 주말에 강원도 여행을 갔다가 근처 면사무소에서 ‘5분 컷’으로 투표를 했다고 한다. 그는 “사전투표는 아무데서나 해도 되는 데다 줄도 상대적으로 짧아서 좋다”고 말했다. 본투표일에는 친구와 함께 인근 하천에서 드론을 날리기로 했다.
20%대 투표율이 14년 뒤 70%대로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20대 후반의 투표율은 24.2%였다. 2020년에는 20대 전후반 각각 60.9%, 56.7%의 유권자가 투표했다. 2007년 대선에서 42.9%이던 20대 후반의 투표율 역시 2017년 대선에서는 74.9%까지 올라왔다.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 상승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도입 10년 차를 맞은 사전투표제가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상 투표일이 사흘로 늘어나고 장소도 넓혀주면서 편의성 커졌다. 여기에 정치적 의견 표명과 ‘가치 소비’ 등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적극적인 MZ의 성향이 시너지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해본 투표는 전부 사전투표”
사전투표는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 도입됐다. 이전에는 관외에서 투표하려면 투표일 15~20일 전 별도로 부재자신고서를 제출한 뒤 투표용지를 우편으로 받아 보내야 했다. 2013년부터 모든 유권자를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는 ‘통합선거인명부’를 사용하면서 유권자들은 별도 신고 없이 사전투표 기간에 언제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게 됐다. 2013년 재보선에서 4.78%에 그치던 사전투표율은 지난 대선 36.9%까지 높아졌다.
사전투표일에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은 휴일인 본투표일의 활용도를 높인다. 최모(19)씨는 지난 27일 학교에 다녀오는 길에 사전투표를 마치고 본투표 날에는 일일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다. 오모(27)씨는 지난 28일 남자친구와 각각 사전투표를 마치고 본투표일 데이트 계획을 짰다. 오씨는 “본투표 때도 마음이 바뀔 것 같지 않아서 미룰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20대는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다른 경우가 많아 사전투표가 더 익숙한 측면도 있다. 서울 소재 대학원에 다니는 강모(26)씨는 “등록주소지는 고향인 부산이지만 거주지는 서울이다. 사전투표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일상에 치여 사는데 본투표일에 부산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 효능감’이 사전투표 만나 시너지
언제부터인가 투표에 대한 의식이 크게 변했다고 일부 MZ세대들은 말한다. 회사원 윤모(37)씨는 “대학 때는 선거나 정치 이야기를 하면 ‘그런 이야길 왜 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고 쉬는 날이라고 놀러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SNS의 투표 인증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했다. 그는 “촛불 시위를 거치면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임모(26)씨는 “부정선거가 아닌 이상 ‘투표를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나중에 한소리 하려면 최소한 투표는 해야 한다”며 “승패를 떠나 ‘이런 걸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꾸준히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전투표 기간 동안 SNS에 올라오는 ‘인증샷’들을 보면서 ‘아차, 투표’ 하고 떠올리게 된다”는 젊은 유권자들도 많았다. 투표의 ‘시간과 공간을 확대한’ 사전투표, SNS 인증이라는 ‘알람 기능’이 더해져 MZ세대의 ‘정치 본능’을 일깨웠다는 얘기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대의 투표율 증가는 의식적인 측면과 기계적인 측면이 모두 있다. 의식적으로는 20대들은 탄핵 국면을 겪으면서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정치 효능감이 확대된 게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계적으로는 투표율이 사흘로 늘어나면서 사전투표 이전에는 투표를 안 했을 사람들까지 투표에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