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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6 18개월, 스포티지 14개월, 투싼 12개월…새차 ‘하세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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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박모(54)씨는 최근 전기차를 구매하기 위해 기아 판매 대리점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기아 전기차 EV6를 지금 주문하면 18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을 들어서다. 박씨는 결국 신차 구매를 포기하고 제네시스 GV60 장기렌터카를 계약했다.

3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생산 차질이 계속되면서 완성차 출고 지연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주로 전기차·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출고 대기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EV6가 대표적이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EV6의 평균 대기기간은 15개월이었다. 제네시스도 마찬가지다.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그동안 현대차·기아보다는 출고 대기기간이 짧은 편이었다. 현대차와 제네시스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부품을 구한다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제네시스에 먼저 부품을 댔기 때문이다.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하지만 이렇게 버티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30일 현재 제네시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GV80은 출고 예상기간이 11개월이다. 두 달 전보다 2개월가량 늘었다. 특정 선택사양(2열 컴포트 패키지)이나 오디오(렉시콘 사운드 시스템)를 선택한다면 1년 이상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G80(3→6개월), GV70(6→9개월) 등 제네시스 주요 차종이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출고 지연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대만 TSMC 등 반도체업체가 증설에 나섰지만 그 효과는 3년 뒤에나 나타난다”며 “올해부턴 점진적으로 풀리고는 있지만, 수급난이 완전히 해소되려면 앞으로 3~4년은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에 적용하는 첨단기술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반도체 개수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첨단 운전자보조 시스템(ADAS) 구현을 위한 차량용 반도체 원가는 160~180달러(약 20만~23만원) 수준이지만, 한 차원 높은 자율주행을 구현하려면 1150~1250달러(약 145만~158만원)짜리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자동차의 점화·충전 등 용도로 사용하는 배선뭉치(와이어링 하니스) 공급 차질까지 겹쳤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세를 막기 위한 방역 정책의 하나로 한 달 가까이 중국 주요 도시를 봉쇄하면서다. 제네시스 GV60·GV70EV·GV80을 제조하는 울산2공장은 중국의 도시 봉쇄로 인해 감산하기도 했다.

전기차 수요 확대도 출고 지연의 요인으로 꼽힌다. 독일 인피니언에 따르면 전기차 1대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차량용 반도체는 내연기관 차량의 두 배가량 된다. EV6를 비롯해 현대차 아이오닉5, 포터EV, 제네시스 GV60 등이 모두 1년 이상 출고 적체 사태를 겪고 있는 배경이다.

다른 완성차 업체도 비슷하다. 한국GM의 전기차 볼트EV는 지금 주문하면 최소 1년 이상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았던 르노코리아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르노코리아는 프랑스 르노그룹 본사에서 반도체를 직접 조달받으면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차를 인도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XM3(1→3개월)·QM6(1→3개월) 등 출고 기간이 늘어나는 추세다. 쌍용차는 대기기간이 1개월로 국산차 중 가장 짧은 편이다. 다만 수출 차량의 경우 출고 적체가 1.5개월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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