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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척 담장 사이로 '애'들과 30년째 짝사랑중…어느 교도관 사연[별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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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숙 교도관이 26일 오후 경기도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자신의 책 '왜 하필 교도관이야?'의 문구가 쓰여진 엽서를 들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장선숙 교도관이 26일 오후 경기도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자신의 책 '왜 하필 교도관이야?'의 문구가 쓰여진 엽서를 들고 있다. 김경록 기자

“30년 넘게 여전히 짝사랑 중이죠”

1990년부터 15척의 담장을 넘나들고 있는 여성은 자신의 지난 30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여성수용자관리 업무를 하는 장선숙(52) 교감(교정공무원 계급)은 “교정 업무는 짝사랑과 같다. 늘 주는 마음이 더 크다. 수용자와 출소자들을 죽으라고 좋아하고 바뀌길 바라지만, 요지부동일 때면 더 그렇게 느낀다”고 말했다.

오랜 짝사랑에 지칠 만도 하지만, 장씨가 걸어온 길은 늘 수용자를 향해 있었다.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수용자들을 더 전문적으로 돕고 싶어 교정공무원으로서는 최초로 직업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지난 2019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교정업무와 수용자들을 다룬 책을 내기도 했다. 그런 그를 26일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만났다.

번호 대신 이름으로… ‘엄마’같은 교도관

장선숙 교도관이 26일 오후 경기도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장선숙 교도관이 26일 오후 경기도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장씨는 수용자들에겐 ‘엄마’와 같은 교도관이다. 장씨는 “때때로 애들이 간접적으로 엄마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남자 수용자의 경우에는 ‘누님’이라고 우스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용자 대 교도관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려고 하다 보니 조금 더 수용자들이 마음을 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씨는 인터뷰 중 수용자들을 습관적으로 ‘애’들이라고 불렀다. 그는 “항상 어디를 가면 ‘집 안에 애들이 있고, 집 밖에도 애들이 있다’고 말한다. 주로 수용자들은 번호를 부르는데, 되도록 이름을 불러주려고 한다”고 했다.

6년째 이어가는 우정… “그들에게 마중물되길”

장씨와 ‘애’들의 우정은 그들이 15척 담장을 나선 후에도 이어졌다. 교도관이 출소한 수용자와 연락을 이어가는 건 극히 드문 일이지만, 그가 출소 후에도 연락하고 도움을 준 수용자는 셀 수 없다고 한다. 출소 후에도 그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장씨는 “출소자들이 재범을 저지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기대고 의지할 데가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정서적인 끈’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그가 출소자들과 운영하는 단체 대화방만 해도 3개다. 이 단체방의 이름은 ‘마중물’ ‘동부녀(동기부여하는 여인들)’ ‘꿈달여(꿈을 향해 달려가는 여인들)’. 그중 가장 오래된 마중물은 2015년 출소자들 3명과 이루어진 방이다. 장씨는 “힘든 출소자들에게 한 바가지의 물이라 생각해 그렇게 이름을 지었는데, 돌이켜 보면 오히려 내가 그들을 통해 배우고 ‘힐링’을 받았던 거 같다”며 “서로 힘이 되어주는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내가 교정 업무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고 힘이 되는 마중물이다”고 했다.

장선숙 교도관이 '마중물' 멤버인 한 출소자에게 받은 편지의 전문. 장씨의 책 '왜 하필 교도관이야?'에 수록됐다. 석경민 기자

장선숙 교도관이 '마중물' 멤버인 한 출소자에게 받은 편지의 전문. 장씨의 책 '왜 하필 교도관이야?'에 수록됐다. 석경민 기자

“시키지도 않는 일 하는 ‘돈키호테’”

최근 다시 보안 현장 업무에 돌아온 그는 자신의 야간 근무를 설 때면 수용자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긴 시를 한 편 골라 취침방송 시간에 수용자들에게 들려준다고 한다. 수용자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길 바라면서다. 최근 근무 때는 박노해 시인의 ‘작게 살지 말아라’는 시를 골랐는데, “수용자들이 잘못에 대해 반성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한다.

이런 장씨를 보며 동료 교도관들도 혀를 찬다고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 “사서 고생한다”는 말도 쉴 새 없이 들었다. 그의 지인들도 그를 ‘돈키호테’라고 부른다. 시키지도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누구보다 열심히 해오는 별난 모습 때문이다.

장선숙 교도관이 26일 오후 경기도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나중에 '교도관이길 참 잘했다'는 마음으로 교도소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장선숙 교도관이 26일 오후 경기도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나중에 '교도관이길 참 잘했다'는 마음으로 교도소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때로는 세상보다 한 사람 보듬는 게 더 소중”

‘돈키호테’와 같은 장씨지만, 늘 보람만 느낀 건 아니다. 최근 장씨는 출소 후에도 계속 연락을 이어갔고 가족까지 소개받은 출소자를 다시 ‘현장’에서 마주쳤다고 한다. 장씨는 “정말 믿었던 만큼 허탈했다”고 했다. “30년 사람을 봐와도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이런 일을 마주할 때면 수십 년 해온 교정 업무에 회의감이 몰려드는 게 사실”이라는 장씨의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회의감이 들 때면, 과거 반복적인 교정 업무에 지쳐있을 때 교정공무원 선배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때로는 세상을 보듬는 것보다 한 사람을 보듬는 게 더 소중한 일이다”. 그는 “교정공무원의 일은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장씨는 “주변에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주어진 환경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며 “아직도 기대를 하고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고 그로 인해 변한다고 생각한다. 난 사랑을 받아봤고, 에너지가 있다. 여전히 교정을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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