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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보끼 할머니 보고싶어요" 1000원 떡볶이집 도배된 손편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분식집 문에 빼곡히 붙은 포스트잇 

 부산 금정구 구서동 오륙도 푸짐한집 문에 붙은 단골 학생들의 응원 편지. 김민주 기자

부산 금정구 구서동 오륙도 푸짐한집 문에 붙은 단골 학생들의 응원 편지. 김민주 기자

27일 오전 10시30분쯤 부산 금정구 구서동 분식집 ‘오륙도 푸짐한집’ 앞. 굳게 닫힌 유리문 위로 노랑과 주황·초록색 포스트잇 40여장이 빼곡히 나붙어 있었다. 쪽지 위엔 “떡보끼(떡볶이) 할머니 아프지 마세요” “할머니 사랑해요. 꼭 나아주세요” “할머니 떡볶이가 또 먹고 싶어요” 등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자 한자 정성스레 또박또박 쓴 손편지나 삐뚤빼뚤한 글씨에도 ‘할머니’를 향한 걱정·응원 등이 오롯이 담겼다.

오륙도 푸짐한집은 떡볶이와 국물 어묵, 튀김 등을 파는 일반 분식집이다. 그런데도 지난 20년간 주변 상권이 프랜차이즈 가게로 바뀌는 동안에도 자리를 지켰다. 구서·동래초등학교와 구서여중 등 학생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휴업 전까지 떡볶이를 개당 100원씩 팔았다. 1000원이면 1인분 정도는 된다고 하니 유명 프랜차이즈 분식집 떡볶이 가격의 3~4분의 1 수준이다. 용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아이들도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내부 테이블은 따로 없다. 하교 때가 되면, 주인 할머니 A씨(70대)의 떡볶이를 먹으러 몰려든 아이들로 가게 앞 인도 변이 왁자지껄했다고 한다.

푸짐한집의 인기는 ‘착한 가격’뿐 아니다. A씨는 늘 아이들에게 “너희가 희망”이라며 살뜰히 인사를 건네고 챙겨줬다고 한다. “정(情)이 푸짐한집이었다”는 주변 상인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산길에 낙상으로 휴업, 애타는 학생들 

부산 금정구 구서동 오륙도 푸짐한집 문에 붙은 단골 학생들의 응원 편지. 김민주 기자

부산 금정구 구서동 오륙도 푸짐한집 문에 붙은 단골 학생들의 응원 편지. 김민주 기자

그런데 최근 한 달 넘게 가게 문이 굳게 닫혔다. 인근 가게 주인은 “(A씨가) 절에 갔다가 하산하던 중 넘어지는 바람에 어깨를 심하게 다친 걸로 안다”며 “단골 학생 몇몇이 이 소식을 알게 됐고 2주 전부터 교복 입은 학생 등이 찾아와 가게 문 앞에 편지를 붙이고, A씨 소식을 묻곤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한 차례 가게에 나왔다. 답장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는 가게 문손잡이에 “얘들아. 편지 잘 받았어. 할머니 빨리 올 수 있게 노력할께(게).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해. 떡뽁기(볶이) 할머니가”라고 썼다.

부산 금정구 구서동 오륙도 푸짐한집 문에 붙은 주인 할머니의 답장. 김민주 기자

부산 금정구 구서동 오륙도 푸짐한집 문에 붙은 주인 할머니의 답장. 김민주 기자

A씨가 가게 문을 다시 열 수 있을지는 현재로썬 알 수 없다. 평소 A씨와 가깝게 지냈다는 맞은편 반찬 가게 주인은 “앞으로 3개월은 더 치료를 받고 요양해야 한다고 들었다”며 “A씨가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지만 연세가 있는 데다 가게 일이 어깨를 많이 써야 하다 보니 고민이 깊은 거로 안다”고 안타까워했다.

2주 전 A씨 가게에 “힘내시라”며 응원의 편지를 남긴 구서여중 3학년 백한비 양은 “맛 좋은 떡볶이에 할머니의 마음마저 담겨 학생들이 즐겨 찾는 ‘소울푸드’였다”며 “음식을 먹지 않아도 늘 할머니께선 밝게 인사해주셨다. 응원도 잊지 않으셨다. 그때마다 절로 힘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오랫동안 할머니를 만나지 못해 너무 아쉽다”며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정리하시더라도 꼭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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