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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리커창 인민일보 1면인데 시진핑 11면…中권력투쟁설 무슨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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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6월까지 모든 조치를 취해 경제 회복을 쟁취하라. 경제는 경제만이 아닌, 중대한 정치문제다.”
지난 25일 ‘전국 경제 지표 안정 화상 회의’에서 흘러나온 리커창(李克强·67) 총리의 육성이다. 이날 회의는 31개 성·시 간부와 2844개 현급 간부 등 10만명이 참석해 지난 1962년 마오쩌둥이 소집했던 ‘7000인 대회(확대 중앙공작회의)’에 빗대 ‘10만인 대회’로 불린다. 지난 2020년 2월 시진핑(習近平·69) 주석이 간부 17만명을 화상 소집했던 회의에 이은 두 번째 규모다.

중국공산당(중공) 기관지 인민일보는 14일자 2면에 리 총리의 9000여자 연설을 뒤늦게 실은 데 이어 17일과 18일자 1면에는 시 주석의 기사가 사라지고 서열 2·3·4위인 리커창·리잔수·왕양의 동정만 게재됐다. 당시 17일부터 19일까지 리 총리는 윈난에서 민생과 취업을 챙겼다. SNS를 도배한 리 총리 현장 영상이 인기를 증명했다.

 지난 25일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 금색 대청에서 전국 공안계통 표창 수여자와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마치 ‘시·리 갈등설’을 반박하는 듯 시 주석과 리 총리의 위상 차이가 드러나는 앵글의 사진이 26일자 인민일보 1면에 실렸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25일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 금색 대청에서 전국 공안계통 표창 수여자와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마치 ‘시·리 갈등설’을 반박하는 듯 시 주석과 리 총리의 위상 차이가 드러나는 앵글의 사진이 26일자 인민일보 1면에 실렸다. [신화=연합뉴스]

군대 조직은 여전히 시진핑 지지

리 총리의 부상은 외신이 먼저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시 주석의 정책에 대한 당내 불만이 확산 중”이라며 ‘리커창 대망론’을 띄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한정 부총리가 리창 상하이 당서기 퇴진을 요구했다”는 당내 갈등을 폭로했다. 상하이 봉쇄로 시진핑 사단이 위기라는 분석을 보탰다.

그러자 시진핑이 한발 뒤로 물러나고 리커창이 대신할 수 있다는 이른바 ‘습강이승(習降李昇)’ 주장이 퍼졌다.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는 시 주석의 방역 우선 노선과 리 총리의 경제 우선 정책의 엇박자도 노출됐다. 인민일보는 26일 리 총리의 ‘10만인 대회’를 1·4면에, 경제 위기론을 부정하는 시 주석 노선을 11면에 실었다. 같은날 상반된 입장의 기사와 평론이 실린 것은 이례적이다. 중화권 트위터에선 ‘리의 부상과 시의 퇴조(李上習下·이상습하)’가 이달 2일 내부 수뇌 회의에서 결정됐다는 소문까지 유포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장기화, 봉쇄 일변도 방역에 대한 반발, 미·중 충돌 격화까지 악재가 연이으면서 시·리 갈등설은 권력투쟁설로 확대됐다.

중국 공산주의 체제에선 보기 힘든 권력투쟁설까지 등장했지만 전문가들은 현재까지는 중국 권부의 이상징후가 노출됐다는 관측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중국 엘리트 동향에 정통한 정치 컨설팅 업체 서시우스 그룹(Cercius Group)의 알렉스 페이예트 대표는 리커창 부상을 ‘독이 든 선물’에 비유했다. 그는 중앙일보에 “시 주석이 리 총리에게 업무를 수행할 충분한 공간을 제공한 것”이라며 “리에게 경제를 바로잡거나 아니면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독이 든 선물’을 줬다”고 말했다. 리 총리가 발언권을 얻은 건 향후 코로나19 수습과 경제 회복 여부에 대한 책임까지 지는 걸 전제로 했다는 취지다. 그는 “리의 행보가 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 머문다면, 차기 상무위원(전인대 위원장) 자리와 교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공 20차 당 대회(20대)를 6개월여 앞두고 군대 조직이 여전히 시 주석을 지지하는 만큼 리 총리가 모멘텀을 얻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단 페이예트 대표는 “시진핑 반대 세력이 자기 파벌에 유리하도록 당내 갈등을 조장하는 선전 활동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국제 정치 분석가 N.S. 라이언스도 시진핑 퇴진설은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승리했던 서구의 냉전 경험을 중국에서 다시 말하고 싶은 서구 언론의 판타지”라고 말했다.

홍콩의 류루이사오 시사 평론가는 최근 명보에 “1959년 루산(廬山) 회의의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반좌(反左)는 곧 반우(反右)로 돌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루산 회의는 군대 실권자 펑더화이 국방부장이 대약진 운동을 마오쩌둥의 오류라며 비판했다가 반당 집단으로 몰려 숙청당한 사건이다.

“배우 내세우는 권력의 극장일 뿐” 

시 주석의 세 번째 임기를 확정할 중공 20대에 참가할 지방 대의원 선출이 코로나19로 인해 19대보다 늦어지고 있다. 5년 전 5월 30일까지 15개 지방의 대의원 선출이 완료됐던 데 반해 올해 완료된 곳은 6곳에 불과하다. 광시·구이저우·하이난·헤이룽장·광둥·칭하이가 선출을 끝냈고, 쓰촨·간쑤·산시·충칭·산둥 5곳은 30일 현재 지방 당대회를 열고 대의원을 뽑고 있다.

우궈광(吳國光) 캐나다 빅토리아대 교수는 “중공 당대회는 지도자가 정당성을 확인받기 위해 배우를 내세워 연기하는 ‘권력의 극장’일 뿐”이라며 “규칙을 제정하거나 누가 규칙을 제정할지 결정하는 일반적 의미의 의회가 아니다”고 분석했다(『권력의 극장』 홍콩중문대, 2018). 1986~89년 자오쯔양 당시 총서기의 정치개혁 실무기구였던 ‘중앙정치체제개혁연구실’의 연구원을 역임한 우 교수는 “민주주의는 선거 절차의 확실성과 투표 결과의 불확실성이 특징인데 반해, 중공식 정치는 절차와 과정의 불확실성을 이용해 결과의 확실성을 보장받는다”며 민주주의 선거와 중국 선거의 차이를 설명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을 놓고 20대에서 마오쩌둥과 버금가는 ‘영수(領袖)’ 칭호와 3연임을 원하는 시진핑 세력과 이것까지는 막고 싶은 다른 정치 파벌이 당대회 폐막일까지 막후에서 치열하게 경합과 협상, 타협을 펼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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