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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소유자" 점거농성...퇴거 명령 고시텔 '씁쓸한 죽음'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2일 점거농성을 하던 거주민들이 숨진 채 발견된 인천시의 고시텔. 이들은 퇴거 명령에 반발해 경찰과 대치해 왔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점거농성을 하던 거주민들이 숨진 채 발견된 인천시의 고시텔. 이들은 퇴거 명령에 반발해 경찰과 대치해 왔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의 한 건물. 경찰차와 구급차 등이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몇시간 뒤 ‘경찰 통제선’이 쳐진 건물에서 흰 천에 덮힌 시신 2구가 밖으로 나왔다. 이 건물에서 3주가 넘도록 점거 농성을 이어온 50대 남성 A씨와 60대 여성 B씨였다.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주비 등 요구하며 점거 농성 벌였던 고시텔 거주자 

이 건물은 몇 개월 전부터 시끄러웠다고 한다. 지난해 한 건설사가 매입한 이후다. 건물주인 건설사는 1995년 준공된 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다른 상인들은 건물을 떠났지만 4~6층 고시텔에 입주하고 있던 일부 거주자들이 반발했다. 건물주가 지난 3월 구청에 철거 멸실신고하면서 수도·전기가 끊겼는데도 일부 거주자들은 ‘이주비’ ‘임시 거처 마련’ 등을 요구하며 무단 점거를 이어갔다.

지난달 18일엔 퇴거 명령을 받은 거주민 4명이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지르려 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과 소방당국이 출동했다. 경찰은 위기협상팀을 투입해 이들을 설득했다. 15시간의 대치 끝에 2명은 밖으로 나왔지만 A씨와 B씨는 여전히 건물에 남았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만약을 대비해 현장 인근에 소방차를 배치하고 건물 밑에 공기 매트리스를 설치하는 등 대배해 왔다. 또 “밖으로 나오라”고 계속 설득했다고 한다.

A씨“친구에게 사기당했다” 주장

하지만 A씨와 B씨는 요지부동이었다. 조사 결과 A씨는 오랫동안 이 고시텔의 관리자로 거주해왔다. B씨는 월세를 내며 6층에서 거주했다.
A씨는 자신이 이 고시텔의 실제 소유주라고 내세웠다고 한다. 그는 “사업하는 친구가 담보가 필요하다고 해 명의를 이전해 줬더니 건물주에게 몰래 팔았다”며 사기 피해를 주장했다.

지난달 18일 고시텔 거주자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고시텔 거주자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 연합뉴스

부동산 등기를 확인한 결과 이 고시텔은 2005년 A씨의 아내 명의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압류·해제 과정을 거치며 2012년 C씨에게 소유권이 이전됐고 지난해 건물주인 건설사가 샀다.

“연락 안 된다” 신고에 찾아갔더니…

건물주는 A씨를 상대로 법원에 퇴거 청구를 하고 건물 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A씨는 점유권을 주장하며 고시텔 안에 가스통 등 인화물질을 쌓아놓고 점거를 이어갔다. 경찰이 안으로 들어오는 기색을 보이면 “가스통을 폭발시키겠다” “불을 지르겠다”며 강경 대응했다. 경찰은 이들을 계속 설득하며 고시텔 내부의 위험물을 조금씩 제거했다.

사고 당일 오전. 견디다 못한 건물주는 이들에게 “협상하자”며 연락을 취했다. 오후 시간에 재차 통화하고 만나기로 했지만 이후 연락이 닿질 않았다.
건물주의 신고에 경찰은 건물 안으로 진입해 복도에 있던 가스통 7개 등 위험물질을 추가 제거했다. 그리고 이들이 머물던 방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후 7시35분쯤 소방당국과 강제로 문을 열고 진입했을 때 A씨와 B씨는 호흡과 맥박이 없는 상태로 방 안에 쓰러져 있었다. 숨진 지 몇 시간이 지난 듯 사후 강직이 나타난 상태였다고 소방 당국은 전했다.

이들의 머물던 방에는 가스 농도가 안전 기준치를 크게 상회했다고 한다. 방 안에도 LPG 가스통 등 위험물이 적치돼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A씨 등의 시신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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