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월출산이 품은 3층탑, 비움의 가치를 배우다

중앙일보

입력 2022.05.13 00:34

업데이트 2022.05.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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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전남 강진 월남사지

김정탁 노장사상가

김정탁 노장사상가

오늘날 경제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기술발전으로 제품 사이에 질 차이가 줄어들면서 디자인이나 제품명과 같은 상징성이 중요해져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I-phone)’ 즉 ‘내 폰’이라 명명한 것도 소비자의 아이덴티티를 이용해 폰을 팔겠다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그래서 제품의 상품성은 실질가치인 ‘재(財)’보다 상징가치인 ‘화(貨)’에 의해서 점점 더 좌우된다. ‘재물’의 상품성은 머리로 이해될 뿐이지만 ‘화물’의 상품성은 마음을 움직여서다.

문화는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가 오감 만족 단계이다. 이 단계에선 오감이 즐거워야 하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문화이다. 둘째가 머리로 이해되는 단계이다. 이를 위해선 스토리텔링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것이 신화로 이어지면 금상첨화다. 참고로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은 외국인에게 신화로 여겨진다. 마지막은 마음으로 와 닿는 단계이다. 산사 체험(템플스테이)을 가장 인상에 남는 한국체험이라고 말하는 서구인의 말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우리 문화는 세 요소를 적절히 다 갖춘 데다 마지막 단계가 다른 나라 문화와 비교해 더욱 도드라져서 문화경쟁력이 남다르다.

빈터만 남은 고려시대 최대 사찰
탑 앞에 서면 한없이 겸손해져

월출산도 거대한 탑으로 다가와
편안하고 장엄한 풍경에 삼매경

텅빈 듯 가득찬 ‘허의 세상’ 감동
“나를 죽여야 내가 살아” 깨우쳐

신라 반가사유상과 로댕의 조각

전남 강진 월남사지 3층석탑 뒤로 월출산이 환하게 보인다. 비움과 채움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사진 김정탁]

전남 강진 월남사지 3층석탑 뒤로 월출산이 환하게 보인다. 비움과 채움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사진 김정탁]

산사 체험 말고 또 어디에서 마음으로 와 닿는 문화를 체험할 수 있을까?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아이콘으로 선정한 반가사유상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반가사유상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매우 대조적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요약되는 서양 근대를 상징하는 조각이다. 그래서 머리로 이해되어도 마음으로 와 닿지 않는다. 미국 필라델피아 로댕박물관에서 이 조각품을 처음 접했을 때 볼수록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각의 주인공이 생각을 뭉칠 줄만 알지 녹일 줄 몰라서다. 반면에 반가사유상과 마주하면 온갖 잡념이 눈 녹듯이 사라져서 무거웠던 마음도 이내 가벼워진다.

반가사유상 말고 또 없을까. 분명히 많을 텐데 그중에서 전남 강진의 월남사지 삼층석탑을 꼽고 싶다. 월남사(月南寺)는 월출산 남쪽에 있는 절이라는 뜻인데 고려시대 최대 사찰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탑만 유일하게 남아서 절의 넓은 공간을 외롭게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 탑을 멀리서 바라보면 외롭기는커녕 장엄하게 느껴진다. 또 월출산 아래 확 트인 넓은 공간을 혼자서 우뚝 지킨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장엄하다 못해 거룩하게도 느껴진다. 그래서 누구든 이 탑 앞에 서면 한없이 겸손해지면서 여기에 의지해 갖은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난다.

월남사지 삼층석탑 자체는 편안한 모습을 한다. 이런 모습은 고려시대 탑의 특징이기도 한데 신라시대 탑의 단아함과 비교된다. 단아함 앞에선 마음이 정갈해져도 편안함에 이르지 못한다. 게다가 월남사지 탑에서 느껴지는 장엄함은 탑의 배경인 월출산이 한몫을 담당한다. 탑 앞에 서면 탑 뒤의 배경으로 있는 월출산이 또 하나의 거대한 탑으로 느껴진다. 편안함과 장엄함은 서로 모순되는 느낌이어도 자연스럽게 와 닿는 건 월출산과 탑이 서로 교차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다. 그래서 월출산이 없는 월남사지 탑의 편안함도 생각할 수 없지만, 월남사지 탑이 없는 월출산의 장엄함도 생각할 수 없다.

닮은 듯 다른 익산 미륵사지탑

월남사지에 남아 있는 진각국사묘비. [사진 강진군청 김종식]

월남사지에 남아 있는 진각국사묘비. [사진 강진군청 김종식]

그런데 월남사지 탑에서 가장 마음으로 와 닿는 건 비움이 지닌 아름다움이다. 월남사지 탑과 비슷한 여건을 지닌 탑으로 익산 미륵사지 탑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비움의 미학이란 차원에선 월남사지 탑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차이는 무엇보다 탑의 배경인 산에서 비롯된다. 월출산은 평야 지대에 불쑥 솟아올라 어디에서나 산자락에서 산 정상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산과 탑 사이의 공간도 넓어 보인다. 게다가 뾰족뾰족 솟아오른 월출산의 옥판봉은 포스트모던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여백의 미를 더한다. 반면 미륵사지 탑의 배경인 미륵산은 정삼각형으로 매우 모던해 중간이 비어 있어도 여백의 미가 덜하다.

비움, 즉 허(虛)는 없다고 하는 무(無)와 다르다. 허는 있어도 그 안이 비어 있는 데 반해 무는 있음 그 자체가 없다. 그래서 무는 관념 내지는 언어상으로만 존재한다. 반면 허는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채워졌다 비워지면 허의 상태가 돼서다. 그래서 허의 반대 개념은 있다는 유(有)가 아니라 채움이라는 만(滿)이다. 즉 채우면 ‘만’이 되고, 비우면 ‘허’가 된다. 따라서 허도 만처럼 존재하는 게지 결코 무가 아니다. 『도덕경』과 『장자』를 읽으면 이런 허의 개념을 자주 접한다. 그만큼 허, 즉 비움은 노장사상을 대표한다.

월남사 인근은 예부터 차로 유명했다. 관련 기록이 나오는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월남사 인근은 예부터 차로 유명했다. 관련 기록이 나오는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불가에선 허 대신 공(空)의 개념을 사용한다. 그래서 불가도 없음이 아니라 비움을 강조한다. 불가는 마음을 비워야 비로소 큰 깨침인 해탈에 이른다고 말한다. 장자는 비움을 위해서 오상아(吾喪我)라는 재미난 표현을 동원한다. 오상아는 ‘본래 면목의 내(吾)’가 ‘살면서 만들어진 나(我)’를 초상 치러 없앤다는 말이다. 그래서 비울수록 마음의 경쟁력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무아(無我)의 상태이다.

반면 아집(我執)에 빠지면 쓸데없는 욕망으로 마음만 혼란스럽다. 이렇게 보면 유가는 ‘채움의 가르침’을, 노장과 불가는 ‘비움의 가르침’을 각각 강조하는 셈이다. 서양 심리학도 아(我)에 해당하는 에고(ego)를 중심으로 펼쳐지므로 ‘비움의 심리학’이 아니라 ‘채움의 심리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문화 영역에서도 ‘비움의 미학’이 소홀히 된 채 ‘채움의 미학’이 이를 대신한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그중 하나다. 필자는 여기가 빈 곳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여전하다. 이 건물이 없다면 지금 마음껏 뛰놀며 즐길 수 있는 큰 공간을 접한다. 서울운동장 터였기에 더욱 그러해야 한다. 도심에서 이런 큰 공간을 만나는 건 세계의 어떤 메트로폴리탄 시민도 누리지 못하는 특권이다. 건축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해도 이 넓은 공간을 혼자서 다 차지하는 건 채움의 미학이 저지르는 횡포로 보인다. 그래서 여기는 한 건축가를 위해 헌납한 공간이지 시민을 위해 헌납한 공간이 되지 못했다.

지금 월남사지에도 채움의 미학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사찰의 건물 복원작업이 계획돼서다. 복원이 안 된 채 탑만 오롯이 있는 게 미학적으로 훌륭할뿐더러 불가의 가르침을 훨씬 더 잘 구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립과 같은 실수가 여기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차로 맺어진 다산과 초의선사

다산 정약용이 즐겨 마신 강진 옥판차를 전승하고 있는 이현정씨. [사진 김정탁]

다산 정약용이 즐겨 마신 강진 옥판차를 전승하고 있는 이현정씨. [사진 김정탁]

월남사지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예부터 스님들이 차를 마시면서 차 문화를 선도해 온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탓인지 월남사지 비각에도 진각국사가 지은 차에 대한 시가 적혀 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도 월남사 부근의 차는 10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다는 기록이 있다. 또 차를 가루로 만들기 위해서 사용한 맷돌이 월남사지 인근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강진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했던 다산(茶山) 정약용은 차 없이는 건강 유지가 어려웠다고 한다. 우리 차의 전통을 중흥시킨 초의선사와의 교제도 이런 연유에서 맺어졌다. 그런데 다산이 평생 마신 차는 월남사지 일대에서 생산된 옥판차(玉版茶)이다. 월남사지 부근의 백운동별서 6대조가 다산의 제자가 되면서 그를 통해 옥판차를 공급받아서다. 유배가 끝나고도 경기도 남양주의 다산 집으로 옥판차 공급이 계속해서 이루어졌는데, 이 약속을 지킨 사람이 이한영이다. 그 후손인 이현정(50)이 지금 월남사지 옆에서 전통차 전승을 위해 애쓰고 있다.

초의선사

초의선사

차는 커피와 달리 비움의 미학과 잘 어울린다.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건 월남사지 탑을 바라보면서 오랜 전통을 지닌 옥판차를 음미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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