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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양심’ 90세 추기경, 반중인사 찍혀 체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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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조셉 젠

조셉 젠

“옳고 바른 말이 그들이 만든 법에 위배된다면 나는 모든 고소와 재판, 체포를 감내하겠습니다. 그들은 진짜 미쳤을지도 모르죠.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둡시다. ‘신은 인간의 파멸을 원하면 광기를 먼저 내린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2020년 7월)

천주교 홍콩교구 제6대 교구장을 지낸 조셉 젠(90·사진) 추기경이 당시 홍콩국가보안법 시행에 부쳐 한 말은 2년이 채 안 돼 현실이 됐다. 홍콩 경찰이 11일(현지시간) 젠 주교와 마거릿 응(74) 전 입법회 의원, 가수 데니스 호(45), 후이포컹 전 링난대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이날 보도했다. 이들은 ‘612 인도주의 지원기금’ 신탁관리자로, 외세와 결탁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당국은 이날 밤늦게 이들을 보석으로 석방했지만, 국가보안법에 따라 여권을 몰수했다.

홍콩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개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에 처하는 법이다. ‘612 인도주의 지원자금’은 2019년 설립돼 홍콩 민주화 시위 참여자들에게 법적 비용과 의료비 등으로 그간 2억4300만 홍콩달러(약 396억원) 이상을 지원했다.

젠 추기경은 1932년 상하이에서 태어났지만, 1948년 홍콩으로 이주했다. 1961년 사제 서품을 받고 로마 교황청이 세운 살레시오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추기경으로 임명됐다가 2009년 은퇴했다. 홍콩 내 대표적인 반중 인사로, 지지자들 사이에서 ‘홍콩의 양심’으로 통한다. 2014년 우산 혁명과 2019년 민주화 시위 등에 적극 참여하는 등 은퇴 후에도 여전히 홍콩 민주화 진영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체포를 두고 CNN은 “소수의 엘리트 유권자들이 (국가보안법 적극 지지자인) 존 리를 행정장관으로 선출한 지 며칠 만에 이뤄졌다”며 “논란의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이뤄진 가장 최근의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 사례”라고 지적했다.

각계에선 우려와 비난이 쏟아졌다. 교황청은 “젠 추기경의 체포 소식을 우려 속에 접했고 상황을 극도로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휴먼라이츠워치는 “90세 추기경의 체포는 홍콩 인권 추락의 상징으로, 존 리 이후 탄압이 고조될 것이란 불길한 신호”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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