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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줄었는데 민원 늘었다?!…코로나가 남긴 역대급 '소음 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의 한 연립주택에 거주 중인 김춘희(77)씨는 최근 공사장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 집에서 50미터가량 되는 거리에서 5층짜리 상가 건물이 1년째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공사장 차로 인한 주차난은 물론이고, 아침저녁으로 공사 소음에 놀랄 때가 많다”며 “대학에서 강의하는 딸이 집에서 원격 수업을 하기 어려워 난감하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서울시내 한 공사 현장. 신혜연 기자

서울시내 한 공사 현장. 신혜연 기자

지난해 서울 공사장 소음 민원 5만건…역대 최대   

김씨처럼 공사장 소음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지자체에 접수되는 공사장 소음 민원도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 25개 구청에 접수된 공사소음 민원건수 통계를 종합해보면 2017년 4만6000여건이던 공사장 소음 관련 민원은 2018년 4만2000여건으로 소폭 줄어든 이후 2019년부터 지속해서 늘면서 코로나가 본격화한 지난해 5만6752건까지 치솟았다. 3년 전보다 35% 이상 는 수치다. 서울시가 공사장 소음 민원 통계를 낸 이래로 최대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 등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서울시 환경정책과 담당자는 “공사장 소음 민원은 보통 사람들이 집에 있는 토요일 오전에 가장 많이 들어온다. 평일 낮에 진행되는 공사는 주민들이 집을 비운 때라서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면서 “코로나로 재택 생활이 길어지면서 평소 같으면 들어오지 않았을 소음 민원까지도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시민이 공사장 소음 민원을 넣기 위해 소음 측정기를 꺼내든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한 시민이 공사장 소음 민원을 넣기 위해 소음 측정기를 꺼내든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원격 수업 어떻게 하라고…” 소음 피해 호소하는 사람들

최근 수년간 공사가 딱히 늘어나는 추세가 아니어서 소음 민원의 증가세는 더 두드러진다. 서울 시내 1000㎥ 이상의 건물 공사 진행 건수는 2017년 1853건, 2018년 1845건, 2019년 1761건, 2020년 1785건, 2021년 1800건이었다. 공사가 더 많았던 3~4년 전보다 지난해의 소음 민원이 훨씬 더 많았다는 얘기다.

서울시 강동구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사장 소음 관련 민원글. [강동구청 홈페이지 캡처]

서울시 강동구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사장 소음 관련 민원글. [강동구청 홈페이지 캡처]

소음 민원 현장 담당자는 “코로나가 소음 민원 증가라는 결과로 바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피해 구제를 호소하는 민원인 중에는 ‘원격 수업을 못 한다’거나 ‘재택 근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공사장 소음 민원으로 접수된 건수에는 아파트 내부의 인테리어 공사도 포함된다. 인테리어 공사의 경우 공사 기간이 한 달 이내로 짧아 현장 계도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아서 전체 공사장 신고 건수의 10% 미만으로 추정된다.

‘허용범위’ 애매…“소음 줄었지만, 분쟁은 늘듯”

분쟁은 늘었지만,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김태환 변호사(동일법률사무소)는 “우리 법원이 소음피해에 대해 심각히 받아들이지는 않아 왔기 때문에 보상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50만~100만원 선”이라며 “피해를 인정받으려면 객관적인 피해 입증 자료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영 변호사(법무법인 지상)는 “피해 인정 시 핵심은 ‘받아들일 만한(수인 가능한)’ 정도의 소음인지”라면서 “이 기준 자체가 애매모호하다 보니 법정에서 사례별로 분쟁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런 일상 사건들에 대해 일일이 재판을 청구하기 시작하면 비용과 시간 낭비가 심하다. 이 때문에 최근 법령은 관리소 등에 중재 권한을 주고 협의를 유도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저소음 공법과 방음 시설의 발달로 공사장 소음은 과거에 비해 실제로는 많이 저감됐다”며 “그럼에도 피해가 계속될 경우 추가로 소음 보완 장치를 요청하고, 공사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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