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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셋 지닌 미얀마 소녀가 웃었다…韓의사가 안긴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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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딸 미야닌히(왼쪽)와 엄마 가지윈은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제공받은 숙소에 머무르다 10일 고국으로 돌아갔다. 심석용 기자

딸 미야닌히(왼쪽)와 엄마 가지윈은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제공받은 숙소에 머무르다 10일 고국으로 돌아갔다. 심석용 기자

“밥을 먹으면 코로 음식물이 흘렀어요. 발도 구부러져서 장화만 신어야 했고요.”
국제구호활동을 해온 김영미(56)씨는 올해 초 받은 페이스북 메시지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발신자는 미얀마 타야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라쉬. 그가 보낸 메시지엔 8살 미얀마 소녀의 사연이 담겼다. 메시지에 첨부된 사진 속 소녀는 잔뜩 찡그린 표정이었다. 입은 삐뚤어졌고 왼발 끝은 굽어 있었다. 라쉬는 “학교 행사에 우연히 본 아이인데 선천적으로 장애를 앓고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소녀의 이름은 미야닌히(8)였다. 미얀마어로 ‘최고의 소녀’를 뜻한다. 8년 전 3가지 장애를 안고 태어난 딸에게 소중한 존재란 의미에서 부모가 붙여준 이름이라고 했다. 구순구개열(입술 또는 입천장의 갈림증) 증상이 있는 그는 식사할 때마다 음식물이 코로 흘렀다. 영양섭취가 어려워 또래보다 야윈 모습이었다. 정확한 발음을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그는 형제들과 달리 학교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성치 않은 손도 문제였다. 오른손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이 붙어버린 합지증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태어날 때부터 굽었던 발 때문에 장화만 신을 수 있었다. 고통은 계속됐지만, 가난과 현지 의료사정 때문에 치료는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소녀에겐 꿈을 되찾아주고 싶었던 선생님은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이국의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라쉬의 요청에 김씨가 나섰고 한국의 한 성형외과가 돕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 듯했다.

가까스로 한국행 비행기 올랐지만

그러나 소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군부 쿠데타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발목을 잡았다.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길 3개월, 희소식이 전해졌다. 90일간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의료관광(C-3-3)비자가 나왔다. 국제구호개발기구 멘토리스 등의 후원으로 비행기 값도 마련했다.

힘겹게 한국에 왔지만, 난관은 이어졌다. 병원에서 “전신 마취를 해야 해서 더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당황한 이들에게 분당서울대병원이 손을 내밀었다. 매년 미얀마로 의료봉사를 떠났던 분당서울대병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장애가 있는 해외 아이들을 국내로 불러 치료해주고 있었다.

김백규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검사 뒤 한 번에 미야닌히의 입술과 입천장, 손가락을 수술하기로 했다. 다시 한국으로 올지 모르는 소녀를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지만, 한 번에 3가지 부위를 수술하는 건 의료진에게도 부담이었다고 한다. 굽은 발은 미야닌히가 더 자란 5년 뒤에 수술하기로 했다. 병원 측이 미야닌히를 위해 수술비를 110만원으로 깎아주고 세민얼굴기형재단 등이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걱정을 덜었다고 한다.

 지난달 11일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마친 미야닌히가 병원에서 회복중이다. 사진 미야닌히 가족 제공

지난달 11일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마친 미야닌히가 병원에서 회복중이다. 사진 미야닌히 가족 제공

4시간 대수술 후 찾은 입술과 손가락 

김백규 교수(왼쪽 넷째)가 수술을 마친 뒤 미야닌히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미야닌히 가족]

김백규 교수(왼쪽 넷째)가 수술을 마친 뒤 미야닌히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미야닌히 가족]

지난달 10일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이 시작됐다. 입술을 지탱하는 근육을 박리하는 수술로 시작해 위턱 전체를 건드리는 입천장 수술로 이어졌다. 이어 손가락을 떼어낸 뒤 피부를 이식했다. 우려와 달리 큰 출혈 없이 무사히 수술을 마무리했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전신마취 뒤 장기간에 걸친 수술을 견딘 미야닌히는 “아픈 걸 고쳐준 의사 선생님들이 너무 고맙다”고 웃었다고 한다.

회복을 마친 미야닌히는 지난 10일 고국으로 떠나기 전 통역을 통해 기자에게 “언젠가 라쉬 선생님처럼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김 교수는 미야닌히에게 꿈을 응원한다고 하면서 엄마에게 후유증이 생기지 않게 딸을 잘 챙겨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김영미씨는“장애로 인해 외톨이처럼 지낼 우려가 있던 아이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준 의료진에게 감사하다”며 “미야닌히 외에도 더 많은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이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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