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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아이콘' 강수일, 대통령 취임식장에 등장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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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 받은 다문화 출신 축구 선수 강수일. [사진 강수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 받은 다문화 출신 축구 선수 강수일. [사진 강수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자격이 되는 사람인가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고 인정해주신 걸로 믿고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습니다.”

10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축구선수 강수일(35·안산)은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TV에서만 뵙던 분들을 직접 보니 신기했다”면서 “나 역시 다문화 가정과 운동선수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에 살던 친부와 처음 상봉한 강수일이 네 분의 부모님과 찍은 가족사진. [사진 강수일]

지난해 미국에 살던 친부와 처음 상봉한 강수일이 네 분의 부모님과 찍은 가족사진. [사진 강수일]

강수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다문화 가정의 좋은 친구’다. 그 자신이 다문화 출신이다. 동두천에서 주한미군으로 복무한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아 어린 시절 한때 반항아로 살았지만, 철이 든 이후엔 다문화 가정을 돕고 어린이를 응원하는 이벤트를 꾸준히 진행했다.

지난해엔 35년 만에 기적처럼 친부를 찾은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주목 받았다. 강수일은 “다문화 출신 친한 동생의 권유를 받아 큰 기대 없이 미국의 DNA 분석업체에 유전자 샘플을 보냈는데, 이를 통해 미국에서 목사님이자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아버지(갈렌 존스 씨)를 찾았다”면서 “미국 내 DNA 분석 업체는 70곳이 넘는데, 헤어진 친척을 찾고자 했던 아버지가 공교롭게도 같은 업체에 유전자 샘플을 맡겨 둔 상태였다”고 했다.

강수일은 우리 사회의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가정을 돕기 위해 노력해왔다. 김성룡 기자

강수일은 우리 사회의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가정을 돕기 위해 노력해왔다. 김성룡 기자

당초 아버지는 “아들을 찾았다”는 DNA 분석 업체의 통보를 믿지 않았다. 강수일은 “아버지가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함께 가자고 권했지만, 어머니는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절하셨다고 들었다”면서 “임신 사실마저 숨긴 터라 내 존재 자체를 모르셨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도 갑자기 없던 아들이 느닷없이 나타난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드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존스 씨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땐 온통 눈물바다였다. 강수일은 “원망한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꼭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던 분”이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자 가정을 꾸리셔서 나에겐 부모님이 두 분씩 계신다. 든든하고 부자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강수일은 자신과 같은 다문화 가정 출신 어린이를 돕기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진행해왔다. [사진 강수일]

강수일은 자신과 같은 다문화 가정 출신 어린이를 돕기 위해 꾸준히 봉사활동을 진행해왔다. [사진 강수일]

아버지를 만난 사연만큼이나 강수일의 삶 자체도 드라마틱했다.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연습생으로 출발해 K리그 무대에서 잠재력을 인정받고 국가대표로 발탁되기까지 과정은 거칠 것이 없었다. ‘다문화 가정의 꿈’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시절이다.

그렇게 인생역전을 이룬 듯했지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수염을 기르고 싶어 바른 발모제에 금지 약물이 포함돼 선수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홧김에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저질러 ‘문제아’로 전락했다.

이후 동남아리그와 일본 2부리그를 전전하며 버티다 지난해 천신만고 끝에 안산 그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K리그 무대에 복귀했다. 8월 첫 득점 직후 강수일은 관중석을 향해 90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사죄 세리머니’로 진심을 표현했다.

지난해 8월 6년 만의 K리그 복귀 골을 넣고 팬들에게 90도로 머리 숙인 강수일.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지난해 8월 6년 만의 K리그 복귀 골을 넣고 팬들에게 90도로 머리 숙인 강수일.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인생의 굴곡을 겪고도 강수일이 여전히 ‘다문화 아이콘’으로 주목 받는 이유는 “축구로 보답하겠다”는 뻔한 변명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강수일은 각종 봉사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며 다문화 가정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돕는데 앞장서왔다. 발모제 사건과 음주운전으로 축구 인생의 위기를 겪을 때도 다문화 어린이 돕기 행사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강수일은 “당시엔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내가 무슨 자격으로 어린이를 돕나’ 싶어 고민했다”면서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어린이들의 즐거움마저 빼앗는다면 더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았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놓았다.

강수일은 “다문화는 ‘다름’의 관점에서 바라 볼 사안인데, 우리 사회엔 여전히 ‘틀림’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축구선수로서, 그리고 그 이후의 삶도 다문화 가정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버지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축구를 하고픈 마음도 있다”고 활짝 웃었다.

강수일은 불우한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사진 제주유나이티드]

강수일은 불우한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사진 제주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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