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관계, 오해 풀 수 있어 좋아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쌀시장을 개방하면 다른 나라들이 쌀값을 올리지 않을까요? 일본도 쌀시장을 개방한 후 흉년이 들어 쌀값이 몇배로 올랐다던데요."

"일본에서 쌀값이 몇배로 올랐다는 통계는 어디서 나왔지요? 전 세계적으로 쌀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값이 폭등하긴 힘들텐데요."

지난달 28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의 한 강의실. 한 중년의 외국인 남성이 20대 여대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었다. 강사는 이번 학기에 국제학부에서 '동북아에서의 국제관계' 강의를 맡은 주한 미국대사관 정치 참사 에릭 존(43). 이날 수업 주제는 '한.미 간의 통상 이슈'로 쌀시장 개방에 대한 토론이 주를 이뤘다.

1984년 부산 영사관 부영사로 한국에 첫 발을 디딘 이후 그는 벌써 세번째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미국 대사관 정치참사로 부임한 것은 지난해 7월. 그는 서울 인사동에서 도토리묵.보쌈.콩비지찌개 등 토속 한국 음식을 즐겨 먹고, 시간이 날 때마다 천상병 시인의 시를 읊는다. 이미 정서적으로 반쯤은 한국인이 된 셈이다.

그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이 대학 국제학부 윤여진(尹汝辰.47)교수가 "학생들에게 한.미 관계의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주려면 당신의 강의가 필요하다"는 제의를 받고 강단에 서게 됐다. 그는 尹교수와 함께 매주 화.금요일에 강의를 진행한다.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최근 양국 관계에 대한 오해가 많아 학생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일회성 초청 강연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처럼 한 학기 동안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할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그는 가끔 강단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반미(反美) 시각이 당혹스럽다고 했다. 한번은 학생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미국이 겉으론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민주정권보다는 친미정권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과 토론을 거듭하면서 한총련의 극단적인 반미 시각이 일부 대학생의 시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한국 대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바로 세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있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도 열린 태도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엔 서울 용산 미8군 기지에서 현장 수업을 한 뒤 주한미군 관계자들과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 바베큐 파티를 열었다.

이 강의를 듣는 송선아(국제학부 2년)씨는 "이라크 파병이나 주한미군 문제 등과 관련해 미국 측의 솔직한 견해를 듣고 토론을 벌일 수 있어 매우 유익하다"고 말했다.

윤혜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