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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비난’ 기자회견문 들킨 이은해, 법정서 ‘자수’ 인정될까

중앙일보

입력

‘계곡 살인 사건’의 피고인 이은해(31)씨의 사건이 인천지법 형사15부(이규훈 부장판사)에 배당되면서 희대의 미스터리에 대한 최종 판단은 법원에 맡겨졌다. 이씨의 유·무죄나 형량과 관련해 특히 관심이 가는 대목은 이씨가 체포되는 과정에서 자수한 것으로 볼 것인지 여부다. 자수가 인정될 경우 형이 줄어들 여지(자수 감경)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이 이씨의 자수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다만, 이씨와 공범 조현수씨는 지난달 16일 은신처에서 체포될 당시 순순히 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씨의 아버지가 경찰에 협조하면서 자수를 설득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석바위 사건 등 사실이 아닌 부분을 바로 잡아 준다는 등의 설득을 통해 이씨의 아버지가 움직였고, 그가 경찰에 ‘딸이 자수하려고 한다’고 한 뒤 검거팀이 함께 오피스텔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씨 등의 위치를 파악한 상태에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아버지를 통해 자수를 권유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황 있지만, 자수로 보기는 애매”

정황상 자수로 볼 여지는 있지만, 그렇다고 자수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검찰 측은 공식적으로 자수라는 표현을 쓴 적은 없다. 검찰이 지난 4일 이씨를 기소하면서 보도자료에 치밀한 도피 행각을 공개한 점도 그런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보도자료에 “이씨 등이 수사검사를 비난하는 허위 주장이 담긴 기자회견문을 작성해 보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이 작성해 PC에 파일로 저장한 회견문에는 ‘지난해 12월 13일 검찰에게 강압수사를 당했다’는 주장이 담겼다고 한다.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씨가 지난달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씨가 지난달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도피 계획을 세워 도주했으며 추적과 검거 이후 상황까지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앞서 한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은 이씨의 한 지인이 “이씨가 ‘내일 6시까지 자수할 테니 그때까지만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언론사 기자를 불러 입장을 피력한 뒤 경찰에 자수하겠다’고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씨의 한 지인은 중앙일보에 “이씨가 도주하기 직전 지인 여러 명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돈을 벌어서 제대로 된 변호사를 만들어 돌아오겠다’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정황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씨가 도주 단계에서부터 자수를 계획한, 이른바 ‘계획 자수’를 했다는 말도 나왔다.

계곡살인 검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계곡살인 검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자수 주장해도 형량 줄긴 어려울 듯”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씨가 수사기관에서 혐의를 부인한 점 등을 볼 때 통상적인 의미의 자수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씨 부녀가 붙잡히기 직전에 양형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자수를 양형에 반영할지는 재판부의 재량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선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부분 등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며 “이들이 범죄사실을 부인한 점, 자수 의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에 불과한 점 등을 보면 설령 자수가 인정되더라도 양형에 반영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 등의 자수에 관한 건 이들이 법정에서 주장할 부분으로 보인다”며 “수사기관은 체포영장에 따라 이들을 체포했다. 자수 인정 여부는 수사기관이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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