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홀가분한” 마음으로 KTX에 오르다
“실제로 할 말이 없어요. 그냥 홀가분하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한 말이다. 그는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KTX(서울-밀양) 안에서 ‘귀향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같이 답했다. 이날 퇴임한 노 전 대통령은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봉하행 당시 기자들에게 농담도 건네며 홀가분한 모습을 보였다.
“빨리 기다려집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대담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마음이 평안하십니까?”라는 손석희 JTBC 전 앵커의 질문에 “예 뭐. 빨리 기다려집니다”라고 답했다. 오는 10일 이후 고향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담긴 표현이었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노 전 대통과 마찬가지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사저가 있는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로 ‘평산행’에 나선다.
길목마다 환영인파, 盧 “이야~ 기분 좋다”
노 전 대통령의 봉하행은 서울역~밀양역~봉하마을로 이어졌다. 이날 노란 풍선을 든 시민 400여명이 “노무현”을 연호하며 환송한 서울역을 시작으로 길목마다 환영 인파가 몰렸다. 밀양역에서는 1500여명의 환영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본 노 전 대통령은 “이제 밀양도 제 고향으로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밀양역부터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노란 풍선이 계속 눈에 띄었다. 밀양에서 봉하마을까지 28㎞ 거리 곳곳에 지지자들이 걸어놓은 풍선이었다. 본산공단에서 마을에 이르는 진입로 1.4㎞ 구간에는 환영 현수막 100여 개가 펄럭였다.
봉하마을에 도착하자 주민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등 1만5000여명이 노 전 대통령을 반겼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적힌 무대에 올라 “이야~ 기분 좋다”라고 외쳤다.
차분한 분위기, 文 “조용히 들어가고 싶어”
문 대통령의 평산행도 KTX를 탄 후 차량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유사하다. 다만 서울역~울산역~평산마을로 이어지는 동안 노 전 대통령의 봉하행때 처럼 대대적인 환영 행사가 열릴지는 미지수다.
우선 봉하마을 때와는 달리 평산마을 현지 분위기가 차분하다. 지난달 ‘귀향 환영’, ‘귀향 반대’ 내용이 담겼던 몇몇 현수막도 사라졌다. 문 대통령도 환영 행사를 여는 것에 대해 “조용하게 사저에 들어가고 싶다”라는 취지로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 또한 “특별한 환영 행사를 계획하진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입을 모았다.
또 평산마을은 수만 인파가 운집하기에는 도로가 협소하고 주차장도 부족하다. 평산삼거리부터 사저까지 약 900m 구간은 폭 4~6m에 불과한 이면도로다. 마을 안길은 차량 1대가 겨우 지날 정도인 데다 주차장은 마을회관 앞에 차량 10여 대정도를 세울 수 있다.
평산마을 주민인 최모씨는 “(우리 마을이) 자연과 벗 삼아 조용히 살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라며 “5년간 고생한 대통령 본인 뜻대로, 조용히 평화롭게 사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산시와 경찰은 오는 10일 혹시라도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평산마을을 오가는 차량을 통제한다. 문 대통령의 사저가 지어졌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평산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늘고 있어서다. 이날 외부 차량은 평산마을로부터 2㎞ 가까이 떨어진 통도환타지아 주차장부터 출입이 제한된다.
방문객들은 대부분 지지자들이지만 보수단체의 항의 시위도 열린다. 앞서 보수단체인 자유대한수호연합 부울경본부 회원들은 지난달 29일 사저 인근에서 확성기를 동원한 ‘대통령 귀향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단체는 오는 6일에도 집회를 예고한 상태다.
文-盧, 5년 만에 다시 만날까?
평산행 이후 문 대통령의 봉하방문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이 머물 평산마을과 노 전 대통령이 머물렀던 봉하마을은 차로 약 50분 거리(60㎞)다. 문 대통령은 5년 동안 봉하마을에 찾지 않았다. 2017년 취임 직후 열린 노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며 “노 대통령님이 그립고 보고 싶지만, 앞으로 임기 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당시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오는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릴 13주기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문 대통령이 참석할지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의 추도식 참석 여부는) 논의 중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