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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원 레고도, 미미도 완판…어린이날에 더 신난 어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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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직장인 이수진(43)씨는 지난달 ‘프렌즈 아파트’ 레고 제품을 구입했다. 우연히 TV에서 1990년대 유명했던 미국 시트콤 ‘프렌즈(Friends)’의 배우들이 다시 모인 토크쇼를 보다가 주인공들이 지내던 아파트를 재현한 레고를 산 것이다. 이 씨는 “30만원 가까운 가격에 잠깐 망설였지만 시트콤을 보며 설레고 기뻐하던 그 시절의 감정이 떠올라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어린이날을 나흘 앞둔 지난 1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완구코너 모습. 뉴스1

어린이날을 나흘 앞둔 지난 1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완구코너 모습. 뉴스1

완구·캐릭터 시장에서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별난 집단으로 여겨지던 ‘키덜트(Kidult)’족이 최근 복고(레트로)열풍과 맞물려 문화 현상의 하나로 자리잡는 추세다. 키덜트는 아이와 어른의 합성어로, 성인이 돼서도 어릴 적 감성을 간직하고 그 경험을 다시 소비하려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레고 성장 이끄는 ‘어른’ 손님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4년 5000억원대였던 국내 키덜트 시장은 2016년 1조원대를 찍고 2020년 1조6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콘텐츠진흥원은 국내 키덜트 시장이 최대 11조원까지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이런 잠재력은 어린이날 100주년이 있는 올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키덜트 제품 대표주자는 세계최대 완구기업 레고다. 3일 레고코리아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레고그룹 전체 판매량 중 성인 고객이 자신을 위해 구매한 비율이 20% 이상”이라며 “성장성이 가장 높은 카테고리 중 하나”라고 말했다.

레고가 성인 고객을 대상으로 출시한 '레고 난초'(위)와 '다육식물'(아래) 모습. [사진 레고코리아]

레고가 성인 고객을 대상으로 출시한 '레고 난초'(위)와 '다육식물'(아래) 모습. [사진 레고코리아]

이에 레고는 인테리어·자동차·건축물·예술·스포츠·패션까지 다양한 ‘성인 제품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엔 ‘레고 보태니컬(botanical·식물) 컬렉션’를 선보였는데 꽃다발과 분재나무, 극락조화 등이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호응이 컸다. 올해도 지난 1일 ‘난초’와 ‘다육식물’을 출시했는데, 두 제품 역시 지난달 사전 라이브 쇼핑방송에서 난초는 1분 만에, 다육식물은 3분 만에 200세트가 모두 판매됐다.

닌텐도·포켓몬 매출 3~4배 뛰어

롯데마트가 운영하는 완구전문점 ‘토이저러스’도 올해는 성별과 연령대 구분 없이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할인 행사를 기획했다. 성인들에겐 추억의 게임기인 ‘닌텐도’를 비롯해 포켓몬·스타워즈·건담 등이 핵심 상품으로 등장했다.

건담 프라모델. [사진 롯데마트]

건담 프라모델. [사진 롯데마트]

닌텐도 포켓몬 게임팩. [사진 롯데마트]

닌텐도 포켓몬 게임팩. [사진 롯데마트]

롯데마트에 따르면 행사를 시작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피규어와 카드, 인형 등 포켓몬 제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320% 이상 증가했다. 게임기·게임팩 등 닌텐도 제품은 260%, 스타워즈와 건담 프라모델도 각각 40% 이상 매출이 늘었다.
여자아이들의 소꿉친구였던 마루인형도 당당히 백화점의 한 매장을 차지했다. 패션기업 LF의 브랜드 ‘헤지스’는 최근 유통업계 전반에 부는 복고열풍을 반영해 ‘헤지스X미미 한정판 인형’을 선보였다. 미미는 국내 장난감 기업 미미월드가 1983년 내놓은 인형 브랜드다.

국내 패션브랜드 헤지스와 인형 브랜드 미미가 협업한 ‘헤지스X미미 한정판 인형’. [사진 LF]

국내 패션브랜드 헤지스와 인형 브랜드 미미가 협업한 ‘헤지스X미미 한정판 인형’. [사진 LF]

LF는 지난달 서울 여의도의 더현대서울 백화점 3층에 복고패션과 미미를 접목한 제품들과 옷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임시 부스를 마련했는데, 예상치 못한 ‘어른들의 인기’에 행사 기간을 오는 12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미미인형의 경우 출시 나흘 만에 1000개가 넘는 물량이 품절되기도 했다. 정지현 LF패션 e커머스 사업부장은 “올해 40주년이 된 미미 인형과의 협업이 추억과 신선함을 동시에 드린 것 같다”며 “키덜트족을 포함해 다양한 세대의 소비자들과 더욱 활발히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점이 키덜트 관련 제품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하지만 감염증 사태 이후에도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키덜트 제품은 나이가 들어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선사한다”며 “부모 입장에서도 추억을 떠올리는 동시에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수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특히 같은 관심사를 나누며 온·오프라인에서 소통하려는 현대인들의 특성에 잘 맞는 상품군이어서 시장은 더욱 커지고 세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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