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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파월의 ‘빅스텝’, 기대만큼 물가 못 잡을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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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강남규 기자 중앙일보 국제경제 선임기자

월가 큰손 켄 피셔의 역발상 전망 

강남규 기자

강남규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닉네임은 ‘달러 신전’이다. 영어에서 조폐창(지금은 중앙은행)을 뜻하는 민트(mint)가 고대 로마 신화의 여신인 모네타(Monēta)에서 유래해서다. 이달 3일(현지시간) 달러 신전의 지성소(至聖所)인 연방공개시장정책위원회(FOMC)가 시작된다. 제롬 파월 등 지성소의 사제들이 모여 기준금리 등을 결정한다.

5월 FOMC ‘빅스텝·양적긴축’ 결정 가능성

통상 FOMC 4~5월 회의는 ‘특색 없는(boring)’는 미팅으로 통한다. 하지만 올해는 ‘중요한(critical)’ 회의로 불린다. 기준금리 인상폭이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에서 빅스텝(0.5%포인트 또는 0.75%포인트 인상)으로 바뀔 수 있어서다. 게다가 양적 긴축(QT)이 시작될 가능성도 크다.

파월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고 QT를 시작하면 인플레이션 파이팅 국면이 바뀐다. 지금까지 파월 등이 말로 위력을 과시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힘을 쓰는 단계에 들어선다.

‘통화긴축→대출위축→물가안정’
금융위기 전에 통하던 침체 가설

“이젠 글로벌 머니 흐름 초단기화
Fed 긴축해도 자금공급 안 줄 것
국채 2년-2개월물 금리차 더 중요”
스태그플래이션 우려 기우일 수도

제롬 파월 미국 Fed 의장

제롬 파월 미국 Fed 의장

긴축이 본격화한다고 당장 개인의 수중에 돈이 줄지 않는다. 일반 시민이나 기업인과는 거리가 있는 달러 저수지의 흐름이 바뀐다. 미국 내 달러 저수지는 크게 은행간 여윳돈(reserve) 시장과 하루짜리 역환매조건부(RRP) 시장이다. 여윳돈 시장은 시중은행이 남는 돈을 초단기로 굴리는 영역이다. RRP 시장에서는 시중은행과 머니마켓펀드(MMF) 등이 여윳돈을 하루 정도 Fed에 맡기고 이자를 받는다. 최근 달러 풍년이 이어져 Fed에 맡겨진 RRP 잔고가 20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다 1조9000억 달러(약 2400조원)에 이르렀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이디트스위스 졸탄 포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Fed가 긴축하면 여윳돈 시장과 RRP에서 달러가 미 국채 등으로 바뀌면서 유동성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미국 장·단기 금리차이 두 가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장·단기 금리차이 두 가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Fed의 긴축으로 달러 저수지의 수위가 낮아지면 물가가 잡힐까. 예전에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에는 물가가 잡혔다. 대안정기는 1987~2007년 사이를 의미한다. 그때 물가는 안정적이고 성장은 탄탄했다. Fed 사람들에겐 행복한 시대였다. 앨런 그린스펀과 벤 버냉키가 그 시절 Fed 의장이었다. 두 사람이 통화를 긴축하면 총수요가 줄었다. 개인의 소비와 기업의 설비투자 등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경기는 둔화하거나 침체에 빠졌다. 그 바람에 임금 상승이 둔화하면서 물가가 잡혔다. 요즘 월가 사람들이 부르는 ‘침체 엔지니어링(engineering recession)’이다.

대안정기 기억이 너무나 또렷해서인지 요즘 파월의 긴축으로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자주 제기된다.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를 비롯해 ‘금융위기 역사가’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침체 또는 스태그플레이션(침체 속 물가상승)을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도 “과거에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며 “지금도 침체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전망했다.

마침 미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1.4%(연율)로 나타났다. 직전 6.9%에서 가파르게 떨어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미국을 강타한 2020년 2분기(-32.9%) 이후 가장 낮다. 게다가 Fed가 긴축할 때마다 나타나는 미 국채 10년물과 2년물 금리 역전 가능성이 뚜렷하다. 장기채 금리가 단기채보다 낮아지면 시중은행 등 금융회사의 대출(신용공급)이 위축돼 결국 소비·투자·고용이 위축된다.

피셔, 248조원 굴리는 ‘21세기 월가의 학장’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 회장

그러나 금융시장엔 늘 기정사실을 거부하는 플레이어들이 있다. 역발상 투자자로 불리는 존재들이다. 요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켄 피셔 피셔인베스트먼트(FI) 회장이다. 그는 ‘21세기 월가의 학장’으로 불린다. 1970억 달러(약 248조원)를 굴리는 자산운용사의 회장이면서 투자 관련 저작을 꾸준히 발표해서다.

피셔 회장은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Fed의 긴축이 침체로 이어진다’는 가설은 글로벌 머니의 흐름이 바뀐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시중은행 예금 구조가 초단기화해서 Fed가 긴축한다고 대출 등이 줄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피셔에 따르면 요즘 미국 시중은행의 예금과 대출 만기가 아주 짧다. 이런 구조에서 “Fed 긴축으로 미 국채 2년물의 금리가 가파르게 올라 10년물을 웃돈다(장단기 금리역전)고 자금공급이 줄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대신 “시중은행 자금공급은 미 국채 2개월물과 2년물 금리 차이에 더 민감하다”는 게 피셔의 설명이다. 그는 “2개월-2년 금리 차이(그래프 참조)가 요즘 더 커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파월이 긴축해도 대출 등이 줄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파월 빅스텝이 물가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침체 엔지니어링이 되지 않아서다. 그렇다면 루비니 등이 말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기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