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제 할일부터 하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금이 개헌 논의로 다투고 있을 땐가
우리는 여권의 개헌추진 재확인방침을 접하고 당혹감과 함께 크나큰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내각제 개헌에 대한 찬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현시점은 여권이 개헌문제를 부각시켜 정력을 소비할 상황이 결코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노 정권 스스로가 지난 5월 「총체적 난국」이라고 규정,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면 개헌은 않는다고 후퇴했던 상황이 조금도 나아진 바가 없고 오히려 정국과 세태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내외 정세가 가일층 엄중하게 우리의 삶을 압박해오고 있고 정부 자체가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민생치안이 말이 아닌 터에 사회에 엄청난 풍파를 초래할 개헌문제에 다시 집착하는 여권 수뇌부의 태도는 안이하다는 인상을 넘어 국가경영에 대한 무책임감으로 비쳐질 따름이다.
특히 지난 3개월여 이상 끌어온 극한 대치의 정국이 협상국면으로 전환되려는 시점에 집권 수뇌층이 개헌문제를 느닷없이 다시 꺼내 정치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고 사회의 중심을 뒤흔들 충격을 몰고와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여권은 개헌문제를 내년에 공론화할 것이라고 했다가 금방 이를 뒤집어 내각제 논의를 본격화시킬 대책반까지 비밀리에 구성했다는 소식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민자당 계파내의 복잡한 구도를 감안하면 그런 내부 사정은 이해가 안되는 바도 아니지만 문제는 민자당이 국정 운영에 1차적 책임을 가진 집권당이라는 점이 망각되고 있다는 데 있다.
계파간 합의사항의 이행이 그처럼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집권 수뇌부라면 국민과의 약속은 그보다 몇십배 더 무겁게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왜 절감하지 못하고 있는지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연말까지 총체적 난국을 해소하겠다던 집권 수뇌부는 민생문제는커녕 정치권의 대치상황마저 해결하지 못한 채 마치 무한궤도를 달리듯 내각제문제로 내분만 일삼아 국민들이 신물을 내고 있는 판국에 다시 이 문제를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무엇인가.
그렇지 않아도 사회는 노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까지 선포해 극단적으로 대처해야 할 만큼 어지럽고 물가 등 경제불안이 고조되고 있어 국민이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는 현실이다.
국정운영의 방향을 결정할 정기국회가 열린 지 두 달이 가까이 다가와도 회의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초경색정국을 푸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집권 수뇌부가 그에 오히려 역행하는 문제를 이 시기에 제기한데서야 말이 되는가.
여권이 해야 할 초미의 급선무는 국회를 정상화시켜 추가경정예산안과 새해 예산안의 처리 등 민생관련,남북협상과 교류의 확대에 따른 내부의 정비,개혁의 줄기인 보안법ㆍ안기부법의 개폐문제 등 처리해야 될 화급하고 중대한 일이 중첩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여권이 계속 이를 도외시한 채 내부의 권력다툼에만 몰두하는 듯한 작금의 작태에 국민들이 계속 협오감만 느끼고 있는 현실에 여권 수뇌부는 맹성해야 한다고 우리는 본다.
여권 수뇌부는 더이상 도당적 이해의 집착에만 연연하지 말고 정치를 정상화할 방안을 찾는 데 최우선순위를 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