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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오리알' 분통…용산 못가자 인사민원 "아주 난리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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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인수위는 다음달 6일 활동을 종료한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인수위는 다음달 6일 활동을 종료한다. 국회사진기자단

잔치는 끝났다. 드디어 정산의 시간이 왔다. 즐길 때는 좋지만 계산대 앞에선 초라해지는 게 우리네 현실. 지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이런 계산대 앞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인수위는 다음달 6일 해단식을 끝으로 활동을 종료한다. 바꿔 말하면 또 다른 관문의 시작이다. 대선 캠프에서 뛰어 승리에 기여한 대선 공신은 크게 두 단계의 관문을 거친다. 대선 승리 뒤 인수위 입성이 첫 번째, 인수위 뒤 대통령실 입성이 두 번째다. 인수위와 대통령실 근무 경력은 이른바 ‘공신록’에 공식 등재됐다는 의미다. 나중에 기업에 취직하거나 직접 선거에 나갈 때 이 기록은 큰 도움이 된다. 인수위 막바지인 만큼 2차 관문까지 통과하려는 캠프 출신 실무진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원래 대통령실 입성은 좁은 문이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실 슬림화’를 공식 천명해 문재인 정부 때 500명에 육박한 대통령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정원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게다가 윤 당선인이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불리는 별정직 공무원 대신 ‘늘공’(늘 공무원)으로 불리는 직업 공무원(관료)을 우선 배치하라는 지시까지 한 상태여서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바늘 구멍’이다.

‘대통령실 슬림화, 관료 우선 배치’ 방침 따라 어공은 바늘 구멍

게다가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용산행의 대안도 마땅치 않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말까지 꾸준히 공공기관 인사를 진행하는 바람에 알짜배기 자리엔 이미 ‘알박기’가 돼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임기를 채우겠다고 나서면 따로 빼낼 방법도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새 정부 초반에는 공공기관에 갈 자리도 많지 않다.

이미 상당수는 용산행 불발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윤 당선인을 도운 국회의원에게 ‘여의도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했고, 함께 돕던 실무진도 ‘모두 데려가라’고 했다”거나 “용산에 못 간다는 소식을 전하며 ‘당으로 돌아가서 지방선거 열심히 뛰어라’고 말했다”는 얘기가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1기 청와대에는 못 들어간다”는 말을 들은 일부 실무진은 이미 짐을 빼고 인수위 사무실에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간신히 용산행 티켓을 거머쥔 경우도 마냥 기쁜 마음만은 아니라고 한다. 당초 비서관(1급)이나 선임행정관(2급) 같은 높은 직급을 바랐던 캠프 핵심 실무진도 원하는 직급을 받을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인사기획관, 부속비서관, 총무비서관 같은 대통령실 요직에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재직 시절 호흡을 맞췄던 검찰 출신 인사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과정을 거치며 윤 당선인의 총애를 받은 걸로 알려진 일부 캠프 실무진도 그래서 비서관 직급은 못 받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尹 검찰 인맥 중용 여파로 대선 공신 직급도 높게 못 받아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눈치 작전도 치열하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인사 민원 때문에 1분에 한 번씩 전화가 와서 전화기가 뜨겁다. 아주 난리도 아니다”라며 “사방팔방에서 ‘죽어라 뛰어서 대통령 만들었는데 대통령실에 못 들어가면 말이 되느냐’고 아우성”이라고 토로했다.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인선이 늦어지자 누가 수석이 되는지 파악하기 위한 정보 싸움도 치열하다. 미리 인사 정보를 알고 일종의 줄을 대려는 목적이다. 그러다 보니 인수위에선 “인수위 출입 기자보다 인사 취재를 더 열심히 하는 공신도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일부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지방선거 후보 캠프에 들어가 새 기회를 얻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달 8일 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달 8일 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이들 공신들이 정권 교체 뒤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경우 실업자 신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덩달아 난감한 게 국회가 있는 여의도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캠프가 꾸려질 때 일부 국민의힘 보좌진은 “캠프에서 열심히 일해서 꼭 정권 교체를 하고 싶다”며 사실상 일방 통보식으로 의원실에 알린 뒤 캠프에 갔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대선 뒤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에게 제대로 상의도 안 하고 자기 뜻에 따라 캠프에 갔던 사람들이 다시 의원실로 돌아오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의원실 배려로 보좌진 신분을 유지하고 파견갔던 인력도 다시 의원회관으로 복귀할 때는 눈치가 보이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캠프행 보좌진 ‘여의도 유턴’에 의원실은 시큰둥

이렇듯 새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인수위가 있는 통의동이 마지막 자리가 되는 ‘통의동 오리알’이 속출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선 불만도 쌓여가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국민의힘 의원은 “전문성 있는 관료를 쓰겠다는 방향은 맞다”면서도 “지금 허니문 기간이라 조용하지, 인사를 이렇게 하면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경선 때부터 윤 당선인을 도운 캠프 실무진의 경우 거의 1년 동안 돈을 받지 못하고 무급으로 일해왔다. 그런 경제적 불이익을 감내한 이유는 대선 승리 뒤 새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였는데, 그게 불발될 경우 불만을 가지는 건 인지상정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아무래도 윤 당선인이 정치권 사람보다 관료, 특히 검찰 인맥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며 “지금 봐서는 윤 당선인이 국민의힘에게 도움을 받았다기보다 국민의힘에 도움을 줬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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