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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 4조 넘게 쏟아부었는데…모두를 피해자 만든 이 제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공사가 중단된 채 유치권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뉴스1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공사가 중단된 채 유치권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뉴스1

최근 조합과 시공사업단(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간 갈등으로 '공사중단' 사태가 벌어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승자가 없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의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짓는 프로젝트로 일부 군(郡)보다 가구수가 많아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 사업'이라고도 불린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 개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 개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현재 상황은 이렇다. 시공단은 공사비 미지급을 이유로 지난 15일 0시부로 전면 공사 중단에 들어갔고, 유치권 행사에 돌입했다. 공정률(공사진행율) 52%에서 공사가 멈췄다. 조합은 이튿날 총회를 열고 시공사업단과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약 5600억원)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공사 중단이 10일 이상 계속되면 시공사 교체까지 검토하겠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중재에 들어갔지만, 조합이 정한 시공사 교체일까지 남은 시간은 4일에 불과하다.

양측의 급진적인 입장 변화가 없다면 이번 사태는 소송전이 불가피하며,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시공단과 조합 모두 경제적·법적 부담을 안게 된 상황이다.

현재 조합은 금융권으로부터 이주비 대출금 1조 2800억원, 사업비 대출금 7000억원을 대여했다. 이에 대한 금융비용은 연간 800억원, 월로 계산하면 67억원 규모다. 갈등이 길어질수록 금융비용에 대한 조합원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또 이주 절차가 2017년도부터 시작되었는데, 조합원들은 현재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월세로 거주 문제를 해결해 왔다. 임대차 계약 갱신청구권을 활용해도 거주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한 조합원은 "7월 이주비 대출 만기 연장이 안 될 경우 견딜 수 있을까 싶다"면서 "그 돈으로 전세 사는 분들은 변제가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데, 조합에서 비단주머니 같은 계책이 있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에 돈을 빌려준 금융사 17곳의 대리은행인 NH농협은행은 이르면 이달 말 대주단(대출 금융사 단체) 회의를 열고 공사 중단 관련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공사가 중단된 채 유치권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뉴스1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공사가 중단된 채 유치권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뉴스1

유치권 행사에 들어간 시공사업단도 공사 중단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시공사업단은 최근 입장문에서 "공사 실착공 후 약 2년 이상(철거 포함 약 3년 이상)이 지나간 현재까지 1원 한 푼 받지 못한 채 약 1조7000억원을 투입해 외상공사를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다 시공사업단은 조합에 사업비 7000억원가량을 지급보증(신용공여)했고 금융비용 1500억원 등을 합쳐 총 2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계약 해지가 가시화될 경우 외상공사에 들어간 비용이 묶이는 셈이다. 공기 중단에 따른 지체상금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조합과의 갈등 내용 등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대외적인 브랜드 이미지 하락도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현 정부의 지나친 분양가 규제를 꼽는다.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누르다 보니 이에 수긍할 수 없는 조합이 일반 분양 시기를 늦추게 됐고, 이 과정에서 시공단과 갈등이 깊어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2017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고 이주 작업 끝에 2019년 12월 착공신고를 했지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서 분양가 씨름으로 당초 2020년 예정이었던 일반분양이 지연되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 추진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둔촌주공 재건축 추진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건설 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공사비 추가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인데도 분양가상한제로 분양가를 쉽게 올리지 못한다"며 "재건축 사업장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분양가 산정 갈등은 다른 수도권 주요 정비사업 단지들의 사업에서도 관측되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15차(래미안원펜타스) 재건축, 송파구 문정동(힐스테이트e편한세상 문정) 재건축, 동대문구 이문1구역 재개발, 경기 광명시 광명2구역(베르몬트로 광명) 재개발 등에서도 분양가 산정과 시공사 교체 등으로 올해로 예정된 일반 분양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일반 분양 지연 물량을 합하면 7000가구가량이다.

이들 조합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분양가 규제를 합리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만큼 추이를 보고 일정을 확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결국 수도권 신규 아파트 공급 지연은 집값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청약을 손꼽아 기다린 무주택 실수요자들도 이번 사태의 피해자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둔촌주공 조합이 시공사를 교체한다고 하더라도 2조5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조달할만한 새로운 시공사들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조합과 현재 시공사업단이 합의하는 게 사업비 증가를 막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분석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양측이 양보하지 않으면 답이 없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윤석열 당선인이 정비사업을 통해 서울 주택 공급을 늘리고, 분양가 상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한다고 약속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의 중재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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