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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아 왜 민가로 뛰는거냐...4살 '빠삐용' 사살한 엽사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빨을 드러낸 수색견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녀석이 근처에 있다는 신호였다. 멀리 풀숲 사이로 검은색 물체가 움직였다. 지난해 11월 22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곰 사육장을 탈출한 반달가슴곰, 빠삐용이 5개월 만에 발견된 순간이었다.

지난해 11월 22일 반달가슴곰이 탈출한 경기도 용인시의 곰 사육농장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2일 반달가슴곰이 탈출한 경기도 용인시의 곰 사육농장에서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곰을 쫓던 한강유역환경청과 용인시 관계자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50m 근처에 펜션, 야영장, 전원주택 단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10m 이내에서 마취총을 쏴야 성공률이 높은데 곰은 눈치가 빨라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다가가면 달아날테고, 조금 멀리서 마취총을 명중시키더라도 잠드는 데 최대 1시간이 걸린다. 시속 50㎞ 속도로 이동하는 곰이 민가를 덮칠 확률이 너무 높았다.

[사건추적]

곰 사살 장소. 용인시

곰 사살 장소. 용인시

“사살합시다.”
누구도 선뜻 꺼내지 못한 말이 허공에 던져졌다. 빠삐용은 민가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강유역환경청과 용인시가 최종 결정을 했고 야생생물관리협회 소속 엽사가 총을 겨눴다. 엽사는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생포하고 싶었는데….”
5개월의 추적에 정이 들었을까. 현장에 있는 일부가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탕.” 빠삐용의 마지막 울음은 총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4년 가까운 생을 마감했다.

지난 14일 사살된 곰은 약 4년 전 용인시 처인구의 곰 사육장에서 태어난 사육곰이다. 곰 쓸개, 웅담을 팔 목적으로 키워졌다. 국내 곰 사육은 1981년 정부에서 농가 소득증대 차원으로 곰 수입을 권장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4년 뒤 곰 보호 여론에 따라 사육곰 수입이 금지됐고, 남은 사육곰은 남게 됐다. 1993년 정부가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웅담 등의 수출이 금지됐다. 현재는 국내 웅담 채취용으로만 곰을 사육·도축하는 것이 허용되며 2026년부터는 농가에서 곰을 사육하는 것이 전면 금지된다.

‘빠삐용’이라 불린 사육곰

빠삐용은 녹슨 철제 우리에서 태어나고 자라다가 지난해 11월 22일, 농장 주인이 구속되면서 다른 곰 4마리와 함께 탈주했다. 이에 앞서 곰 한 마리가 탈주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농장주는 자신의 불법 도축 혐의를 감추려고 2마리가 달아났다고 허위 신고를 했다가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관리인이 없어지자 다섯 마리가 먹이를 찾아 우리를 나온 것이다.

지난해 11월 22일 빠삐용이 탈출한 경기도 용인시의 곰 사육농장.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2일 빠삐용이 탈출한 경기도 용인시의 곰 사육농장. 연합뉴스

2마리는 수색 20분 만에 사육장 인근에서 잡혔고, 2마리는 사살됐다. 곰 사살 소식에 일부 시민 단체가 반발하면서 나머지 한 마리는 포획·생포로 방침이 바뀌었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추진하는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이 현장에 투입됐다.

그 다섯번째 곰에게 이름이 생겼다. 가축 취급을 받는 사육곰은 통상 이름이 없는데, 동물자유연대가 ‘빠삐용’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스티브 맥퀸이 열연한 교도소 탈출 영화 ‘빠삐용’(1973년)의 주인공처럼 ‘자유를 찾아 탈출한 곰’이라는 의미였다. 불어로 나비를 뜻하는 빠삐용은 영화 속 주인공의 나비 문신에서 유래한 이름이었다.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

겨울잠까지 자며 5개월 도주

빠삐용은 이름값을 했다. 보통 곰의 행동반경은 1~2㎞이고 평생을 철제 우리에서 보낸 사육곰의 행동반경은 더 좁은데, 생각보다 멀리 달아났다. 한강유역환경청과 용인시도 이런 곰의 습성을 따라 초창기엔 사육장 인근 3㎞ 반경을 수색하다 6㎞ 반경으로 늘렸다.

겨울이 됐지만, 빠삐용의 흔적은 없었다. 한강유역환경청은 포획틀 18개를 곳곳에 설치하고 주변에 꿀과 과일 등 먹이를 뿌렸지만, 사육곰을 꾀어내진 못했다. 양두하 국립공원연구원 남부보전센터장은 “꿀이나 과일 등은 곰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인데 사육곰은 이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관심을 갖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곰들이 탈출한 경기도 용인시의 한 사육농장. 용인시

곰들이 탈출한 경기도 용인시의 한 사육농장. 용인시

일각에선 ‘동면’ 가능성이 제기됐다. 야생곰은 11월부터 1월 사이에 겨울잠을 잔다. 그러나, 사육곰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양 센터장은 “곰이 동면을 하는 이유는 먹이가 없어선데 사육곰은 겨울에도 먹이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이라 동면을 하지 않는다”며 “먹이가 부족하면 움직임이 둔해져 은신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곰이 은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열화상 드론을 띄웠지만, 빠비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4개월 만에 LTE 카메라에 포착되다 

날이 풀리면서 도토리 등 먹이가 있는 곳에서 흔적이 나타났다. LTE 카메라 18대가 곳곳에 설치됐다. 지난 3월 24일 카메라에 빠비용이 포착됐다. 탈출한 사육장에서 2~3㎞ 떨어진 처인구 호동 예직마을 뒷산에 설치된 카메라였다. 6일 뒤 민간의 CCTV에서 빠삐용이 발견됐다.

한강유역환경청 등은 빠삐용을 생포하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조를 꾸렸다. 곰 전문가인 국립공원공단이 수색을 지휘했다. 마취총을 쏠 수 있는 수의사가 동행했다. 야생생물관리협회 회원들은 엽총 대신 지팡이를 들었다.

용인 사육곰 ‘빠삐용’의 도주 5개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용인 사육곰 ‘빠삐용’의 도주 5개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아직도 곰들이 갇혀 있다

“길가에 곰 같은 것이 있어요.”

지난 17일 오전 5시 35분. 차를 타고 이동하던 행인이 빠삐용을 발견했다. 수색조는 신고 장소에서 1.3㎞ 떨어진 민가 근처에서 빠삐용과 맞닥뜨렸다.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생포를 기대했다. 하지만, 어린 곰이라고 해도 무게가 70~80㎏에 달해 공격성을 보이면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사살은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체구가 커진 탈출곰 대부분이 사살되는 이유다. 빠삐용은 더는 나비처럼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문제는 남은 곰들이다. 사육장 주인은 용인과 여주시에서 90여 마리의 곰을 키운다. 징역 6월의 형기를 마친 그는 20일 출소했다. 사유 재산인 곰은 사육장 주인이 돌보게 된다. 그는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이 사육 포기를 요구했지만, 거부했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은 또 다른 빠삐용이 나타날까 걱정하고 있다. 철장에 갇히 곰들의 삶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사육장 인근에 거주하는 60대 주민 김모씨는 “곰이 탈출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겁이 나서 밖에도 못 나가고 잠도 못 잔다”고 항의했다. 용인시 관계자는 “주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농장 시설을 확인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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