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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 주공은 예고편…자잿값 급등에 전국 건설현장 600곳 멈추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레미콘과 철근 등 자재 값이 급등하면서 수급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레미콘 공장의 모습. [연합뉴스]

레미콘과 철근 등 자재 값이 급등하면서 수급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레미콘 공장의 모습. [연합뉴스]

시멘트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로 오르는 등 건설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국의 건설현장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세계 최대 철근 생산국인 중국의 수출제한으로 지난해부터 철근값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의 러시아 전쟁으로 유연탄 가격이 급등하면서 시멘트 가격마저 폭등하고 있다. 치솟은 자잿값에 공사중단(셧다운)을 선언하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고,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으로 아파트 분양을 늦추는 현장도 늘고 있다.

시멘트 사상 처음으로 두자릿수 상승 #철근콘크리트 업체 공사중단 선언 #공사비 갈등에 분양 늦추는 현장도 #분양가 규제에 공급 부족 심화할듯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시멘트업계 1위인 쌍용C&E는 지난 15일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와 1종 시멘트 판매가격을 1톤당 7만8800원에서 15.2% 인상한 9만8000원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7월 5.1% 인상한 뒤 약 8개월 만에 또다시 두 자릿수 인상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 전쟁이 부른 유연탄 가격 폭등 

제조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유연탄 가격이 전년 대비 256%나 오른 데다가 요소수 공급 부족 등에 따른 원가 상승 부담이 큰 탓이다. 국내 시멘트사들은 유연탄을 전량 수입하고 있고, 지난해 기준으로 러시아에서 들여온 유연탄이 약 75%를 차지한다.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시멘트 가격이 두 자릿수로 급등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시멘트 가격이 오르면서 건설현장에 공급되는 레미콘 가격도 인상될 예정이다.

치솟는 건설 원자재 가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치솟는 건설 원자재 가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철근값도 무섭게 오르고 있다. 최근 철 스크랩(고철) 가격이 치솟으면서 고철을 원료로 만드는 철근과 형강 등 건축용 철강재 가격이 덩달아 급등하고 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고철 평균 가격은 지난해 3월 톤당 42만원에서 지난 3월 69만4000원으로 63% 오른 뒤 이달 들어 70만원대를 넘어서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기존 최고가는 2008년 국내 철근 파동 때 기록한 68만원이다.

건설자재 가격은 전체 공사비의 30%를 차지한다. 자재 가격 인상에 따라 공사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에서는 자재 대란으로 공사 현장이 멈출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철근·콘크리트 업체 공사 중단 선언

경기도 안양시내 한 레미콘 공장에서 운반 차량들이 운행되고 있다. 뉴스1

경기도 안양시내 한 레미콘 공장에서 운반 차량들이 운행되고 있다. 뉴스1

철근·콘크리트 등으로 건물 뼈대를 세우는 골조공사 전문업체들은 원자잿값과 인건비가 급등해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며 20일부터 무기한 공사중단에 나선다. 19일 호남·제주 철근콘크리트 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철근콘크리트연합회는 전날 서울에서 회원사 전체 회의를 열고 20일부터 무기한 파업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급등한 가격을 반영해 공사 계약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공사를 중단하면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전국의 대형 아파트 건설현장 600여곳이 멈춰 설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크다.

이미 철근 공급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된 현장도 속속 나오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측은 “지금 공사 중인 현장을 보면 아무리 단기공사라도 지난해 계약을 체결했을 텐데 1년 사이에 자잿값이 너무 올라 공사업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공공사는 규정에 따라 물가상승률만큼 공사비를 올려받을 수 있지만, 민간공사는 계약서에 나와 있는 공사비를 조정하기 어렵다”며 “결국 적자공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건설협회는 지난달 국무조정실, 국토교통부 등 정부 관계부처에 자재수급 불안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정부 규제에 자잿값 인상 겹쳐 분양 늦추는 단지 속출

자잿값 인상은 분양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등 정부의 분양가 규제가 이어지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분양 시기를 늦추는 재건축 단지 등이 늘고 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 ‘힐스테이트e편한세상 문정’은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일반분양이 어려울 전망이다. 조합에서 높은 분양가를 받기 위해 택지비 평가를 미루고 있어서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 15차는 5월로 예정했던 분양일정을 하반기로 미룬 상태다. 최근 현대건설 등 메이저 시공사 4곳이 공사를 중단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처럼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갈등을 벌이는 단지도 늘고 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재 가격 상승은 아파트 공급 지연을 초래하고 결국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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