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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기의 소통카페

정부 정보도 청와대처럼 개방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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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 커뮤니케이션학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 커뮤니케이션학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온갖 태클을 뿌리치는데 한 달 가까이 걸렸다. ‘청와대에서 단 하루도 살지 않겠다.’ ‘야전 천막을 치거나, 야전 침대라도 펼치겠다’는 당선인의 요지부동 확신 때문에 이전이 가능했다.

대통령의 용산 시대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지난 74년 동안 청와대가 상징하는 과도한 권위주의와의 결별이다. 구체적으로 제왕적 권력과 사고방식, 과잉 의전의식(ritual), 비밀주의, 비공개성, 일방통행 소통방식과 단절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 경청을 용이하게 하고, 국민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한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구중궁궐이 된 청와대에 대한 전체 포기가 아닌 부분 보수로는 앙시앙 레짐을 떨쳐버리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용산 시대, 정보공개의 전환점
기밀·안보라며 정보 숨겨와
국민이 알고싶은 정보 공개해
특권의식, 세금 낭비 견제해야

소통카페.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소통카페.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러나 이제 ‘청와대 이전’ 자체가 상징하는 시효는 끝났다. 지금부터는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에 대한 평가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에게 청와대를 제대로 돌려주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정부의 정보를 가두었던 문을 활짝 열고 그동안 기밀·안보라는 이유를 방패삼아 숨겨온 각종 정보를 국민에게 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알리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고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알게 해야 한다. 정보에 대한 비공개 지향 의식과 관습 및 제도를 과감하게 버리고 정부와 국민이 함께 정보를 공유할 때 명실상부하게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2020년 9월 22일 해상 근무 중에 바다로 떨어져 서해상에서 표류하던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북한군이 총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사건에 대한 조사는 월북 암시, 현실 부적응과 같은 고인을 비하하는 2차 가해의 논란만 일으켰을 뿐, 북한군의 행위 과정과 책임에 대한 정보는 오리무중이다. 사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에 정부는 항소로 불복했다. 유족은 대통령이 고인의 아들에게 보냈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는 편지를 공개적으로 반납하면서 정부가 ‘정보를 감추기에 급급하다’며 분노했다. 정부는 ‘청와대 특수 활동비 집행 내역과 대통령 부인의 옷값 등 의전비용, 워크숍에서 제공한 도시락 가격을 공개하라’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도 국가안보 문제 등을 이유로 항소했다. 두 사건에 대한 정보는 항소심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어 15년 이상 비공개의 밀실에 갇힐 수 있다. 국민과 국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의 의사결정과정이나 각종 위원회의 인사 선정에 대한 의사록과 회의록이 비공개의 장벽으로 숨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용산 대통령 시대의 개막은 공간의 이동을 넘어 정보공개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군사적 이유에서 밝히지 말아야 할 정보가 아니라면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밝히지 않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권력자나 집권세력은 자기의 부정과 과오를 은폐하려는 목적을 위해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자유를 부정하고 진리와 정의를 발견하는 이성적 토의를 배제한다”(『근대국가에 있어서의 자유』, 라스키). “국민의 자산인 정부의 정보를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데 “정부는 다른 이익을 은폐하려고 기밀을 유지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국민자유권의 적극적 실천도구』, 김동진).

정보공개는 권력집단의 특권의식을 타파하고 부정부패와 밀실 행정 및 세금 낭비를 견제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여 청와대를 왁자지껄하게 거니노라면, 국민은 내 나라이면서도 쉽게 갈 수 없었던 권력의 공간과 풍경에 안겨 세상의 변화를 체감할 것이다. 정부의 정보가 폐쇄의 빗장을 열고 공개되고 공유되면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라는 존재감과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정보의 비공개에 의존하는 리더십은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개방성과 역동성을 리드할 수 없다. 권력이 투명할수록 국민의 참여와 주인의식은 높아진다. 정부와 국민이 일방적이 아닌 쌍방향의 소통을 하는 동등한 존재가 될 때 국민은 청와대를 제대로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