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절정인 4월, 한창 봄꽃을 만끽할 시기이지만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때 이른 초여름 더위와 쌀쌀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다행히 이번 주말엔 맑은 날씨를 회복할 전망이다. 오늘과 내일,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 살아남아 '꽃 대궐'을 이루고 있는 고궁의 봄꽃을 즐기기엔 충분할 듯하다.
창경궁 홍화문을 지나 정면으로 쭉 직진해 들어가면 경춘전 옆 담벼락 화계(花階·계단식 화단)에 핀 형형색색의 꽃이 한눈에 들어온다. 앵두꽃, 진달래, 풀또기, 개나리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게다가 화계 앞 함인정에 앉아 봄꽃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한적한 궁의 여유도 함께 누릴 수 있다.
창경궁 바로 옆 창덕궁은 후원 입구에 위치한 홍매화가 유명하다. 하지만 홍매화는 이미 잎이 다 떨어져 볼 수가 없고 그 대신 낙선재 앞 큰 피자두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홍자두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머리 위까지 길게 늘어진 분홍빛 꽃잎 아래 기념사진을 찍기 좋다.
월대복원 공사가 한창인 덕수궁 입구에 들어서 오른쪽으로 가면 함녕전 앞에 능수벚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능수버드나무처럼 가지가 축 늘어진 이 나무의 분홍 꽃잎과 노란 산수유, 새빨간 명자나무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또 덕흥전 앞 나무벤치에서 함녕전 뒤 조성된 진달래꽃밭을 내려다보며 차분하게 사색을 즐길 수 있다. 한편 석어당 앞 살구나무는 살굿빛에서 초록빛으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햇살과 어우러져 봄기운을 내뿜는다.
조선 왕조 최초의 궁궐인 경복궁의 경회루에 가면 수양벚꽃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늘어진 벚꽃과 함께 경회루, 경회지를 한 컷에 담을 수 있어 관광객에게 기념사진을 남기는 필수코스다. 경회루를 등지고 보면 수정전 옆 갈림길에 서 있는 초록, 연두가 어우러진 자두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경회루를 보러 가던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편 경복궁 봄꽃의 대표주자인 자경전 살구꽃은 이미 떨어졌고, 만개한 아미산 앵두꽃은 봄 햇살과 함께 환하게 빛나고 있다.
조선왕릉에도 봄꽃이 가득하다. 종묘에 들어서면 중지 한가운데 솟은 큰 향나무 아래에 핀 진달래꽃이 눈길을 끈다. 외대문 바로 옆 벚나무는 떨어진 벚꽃잎으로 연못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이외에도 성북구 정릉엔 개나리·진달래꽃이 관람로와 개울을 따라 만개했고, 노원구 태릉과 강릉에서는 산수유꽃·진달래꽃과 솔숲이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서울을 벗어나면 고양 서오릉, 남양주 광릉 등지에서도 봄꽃을 감상할 수 있고 특히 여주 세종대왕릉에는 길이가 700m에 이르는 진달래꽃길이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 따르면 올해 궁궐과 조선왕릉 봄꽃은 평년보다 3∼11일 먼저 꽃망울을 피울 것으로 보인다. 4월에 절정을 이루고 5월 말까지 서로 다른 봄꽃들이 연이어 개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