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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 "尹신분 보장하라"...9년전 그날부터 '尹 뒤엔 김한길' [尹의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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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해 11월 21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오른쪽)와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김 전 대표의 사무실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11월 21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오른쪽)와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김 전 대표의 사무실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검찰총장은 대통령감으로 어떻습니까.”

2년 전 어느 날 김한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장은 정대철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를 결정해 문재인 정부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윤 총장이 정치권에 등장한다면 폭발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11일 김 위원장을 만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총장 재직 중일 때부터 서로 교감을 갖고 대선 준비를 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김 위원장은 “10년 전쯤부터 윤 당선인과 인연을 맺어왔지만, 윤 당선인의 정치 참여를 설득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검찰총장 사퇴 직후인 지난해 3월부터 정치참여를 선언한 6월 사이 어느 즈음”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모습을 보며 정권교체가 시대정신이란 생각이 확고해졌다. 다만 보수진영 후보들은 대부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덕을 보며 커왔던 사람들”이라며 “두 사람에게 빚이 없는 인물이 누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윤 당선인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엔 아이디어 차원의 고민이었다”고 덧붙였다. 그가 윤 당선인의 숨은 ‘킹 메이커’였던 셈이다.

박근혜 만나 “윤석열 신분 보호” 요구

2013년 9월 17일 당시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환갑을 맞이한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부인 최명길씨가 가져온 미역국을 먹고 있다. 당시 김한길 위원장은 국정원댓글수사 특검 등을 요구하며 서울시청광장에서 100일간 천막 농성을 벌였다. 중앙포토

2013년 9월 17일 당시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환갑을 맞이한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부인 최명길씨가 가져온 미역국을 먹고 있다. 당시 김한길 위원장은 국정원댓글수사 특검 등을 요구하며 서울시청광장에서 100일간 천막 농성을 벌였다. 중앙포토

김 위원장과 윤 당선인의 인연은 2013년 10월 21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 국정원댓글수사팀장이던 윤 당선인은 윗선의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하며 주목받았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윤 당선인의 발언이 나온 자리였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김 위원장은 국회 법사위원이 아닌데도 법사위 국감장을 찾아 윤 당선인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봤다.

이어 다음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 위원장은 “윤석열 지청장의 증언을 통해 진실의 상당 부분이 국민 앞에 드러났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국정원의 조직적 대선개입 사실을 감추려는 권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오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대한 권력에 맞서 외롭게 싸워온 수사팀 검사들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그해 8월부터 100일간 서울 시청광장에 펼친 천막당사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의 특검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었다. 야당 당수의 천막 농성에 부담을 느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김 위원장과 영수회담을 했는데, 당시 김 위원장의 요구 사항 중 하나가 “윤석열 검사 등을 비롯한 수사팀의 신분 보호”였다. 하지만 이듬해 1월 윤 당선인은 대구고검으로 좌천성 인사 발령을 받았다.

숨은 ‘킹 메이커’…쓴소리 총대

윤석열(왼쪽)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자에 앉으려 하자 김한길 위원장이 의자를 빼주고 있다. 뉴스1

윤석열(왼쪽)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자에 앉으려 하자 김한길 위원장이 의자를 빼주고 있다. 뉴스1

그런 과정에서 인연을 맺게 된 윤 당선인과 김 위원장은 이후에도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하는 등 교류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사퇴 직후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했을 때 뒷배경에 김 위원장이 있을 것이란 얘기가 여러 경로를 통해 흘러나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철저히 외부 노출을 피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윤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선대위 합류가 불투명하던 지난해 11월 윤 당선인은 김 위원장을 후보 직속의 새시대위원장에 임명하며 그에 대한 신뢰를 내비쳤다.

민주당 대표 출신인 김 위원장에 대해 국민의힘 내부에선 견제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특히 김 위원장의 공조직 합류가 대선 이후 정계개편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여러 뒷말들은 무시하고 묵묵히 뒤에서 윤 당선인을 도왔다.

지난해 연말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도 김 위원장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선대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윤 당선인은 김 여사의 기자회견 여부를 두고 굉장히 고민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기자회견 아이디어나 사과문 초안에 김 위원장이 많이 관여했다”며 “윤 당선인을 설득하는 역할도 김 위원장이 맡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여사 회견 이후 당 안팎 인사들이 윤 당선인에게 직접 전하기 어려운 의견 등을 대신 말해달라고 부탁해 김 위원장이 ‘총대’를 멘 적도 적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尹정부 성공 못 하면 굉장히 괴로울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김한길 위원장 주최로 열린 각계 분야의 국가 원로들에게 국정 전반에 대한 고견을 듣는 '경청식탁, 지혜를 구합니다' 행사에 참석해 기념촬영 후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참석자는 문정희 동국대 교수, 김황식 전 총리, 신낙균 전 여성유권자연맹회장, 정대철 소강육영재단 이사장, 윤 당선인, 신영균 국민의힘 상임고문회 회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전윤철 전 공정거래위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김한길 위원장 주최로 열린 각계 분야의 국가 원로들에게 국정 전반에 대한 고견을 듣는 '경청식탁, 지혜를 구합니다' 행사에 참석해 기념촬영 후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참석자는 문정희 동국대 교수, 김황식 전 총리, 신낙균 전 여성유권자연맹회장, 정대철 소강육영재단 이사장, 윤 당선인, 신영균 국민의힘 상임고문회 회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전윤철 전 공정거래위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폐암으로 2~3년간 투병 생활을 한 김 위원장은 현재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상태라고 한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서울 광장동 자택에서 이촌동 개인 사무실까지 편도 18㎞가량 거리를 매일 출ㆍ퇴근하고 있다. 한번은 이촌동 사무실을 찾은 윤 당선인이 한 쪽에 세워진 자전거를 보고 “누가 타는 겁니까”라고 물어 김 위원장이 “제가 타는 겁니다”라고 하자 “건강은 다 회복되신 거네요. 그럼 일하셔야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 위원장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어떤 역할도 마다치 않고 돕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윤 당선인이 성공한 대통령이 못 되면 내가 굉장히 괴로울 거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가령 당선인이 어떤 부처의 장관을 돕기 위해 당신이 가서 차관 같은 거 하면서 도와주면 어떠냐, 그러면 제가 그 일을 기꺼이 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윤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은 한번 신임한 사람은 반드시 중용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도 윤석열 정부에서 모종의 중책을 맡을 것이란 게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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