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전문 스타트업인 업스테이지는 2020년 10월 창업과 동시에 ‘풀리모트(완전 원격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입사자에겐 재택근무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PC·책상 구매비 등으로 500만원을 현금으로 지원한다. 근속 1주년이 넘을 경우 추가로 500만원의 지원금을 준다. 요컨대 ‘1000만원을 줄테니 집에서 일해 달라’고 요청하는 격이다. 물론 재택근무를 원치 않으면 카페나 공유 오피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해준다.
그렇다고 이 회사가 비대면으로만 소통하는 것은 아니다. AI 봇이 일주일에 한 번 두 사람씩, 한 달에 한 번 네 사람씩 온·오프라인에서 서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매칭시켜 준다. 이와 별도로 2인 이상 모이는 티타임 모임(무제한)과 3인 이상 모이는 회식(인당 3만원)에도 비용을 지원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15일 중앙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글로벌·지역 인재 유치를 위해 창업 초기부터 자율근무제를 도입했다”며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앞으로도 지금의 근무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 5일 사무실 근무 희망” 2%뿐
국내 대기업에선 재택근무를 해제하거나 단계별 축소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정보기술(IT) 업계에선 재택근무를 지속하거나 되레 강화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 1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제2사옥인 ‘1784’를 공개한 네이버는 신사옥 완공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를 오는 6월까지 이어나갈 방침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달 직원 대상 조사를 통해 재택근무가 생산성과 업무 협업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직 하이브리드나 전면 등 근무 형태를 결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개인에게 선택지를 주는 게 가장 최적의 업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네이버가 본사 직원 4795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근무제도 선호도를 설문한 결과, ‘주5일 사무실 출근’을 선호하는 이는 2.1%에 불과했다. 필요에 따라 집이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혼합식 근무(52.2%)’나 ‘주5일 재택근무(41.7%)’를 희망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2주 80시간 근무면 시간·장소는 마음대로
SK텔레콤은 직원들이 가까운 사무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7일부터 서울 신도림과 경기도 일산·분당 3곳에 거점형 업무공간인 ‘스피어’를 오픈했다. 별도 출입카드 없이 얼굴 인식으로 입장하고 SKT가 자체 개발한 앱을 통해 좌석 예약이 가능하다. 책상에 있는 태블릿에 얼굴을 인식하면 ‘가상 데스크톱 환경(VDI)’과 연동돼 평소 쓰던 PC와 동일한 환경에서 업무를 볼 수 있다.
SKT 관계자는 “거점오피스를 바탕으로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업무 문화인 ‘워크 프롬 애니웨어’를 본격적으로 확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워크 프롬 애니웨어’는 최소 2주에 80시간 또는 4주에 160시간 이상 근무하기만 하면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삼성전자는 회식·집합 교육 등의 행사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허용하지만, 부서별 최대 50%인 재택근무 비율을 당분간 유지키로 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달 초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위드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재택근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카카오 역시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출근하는 현행 근무 체제를 6월까지 유지할 방침이다.
‘영구 주4일 재택’으로 인재 유치
IT 기업이 이처럼 ‘재택근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인재 영입’ 때문이다. 이달 1일 출범한 NHN클라우드는 6개 부문에 걸쳐 두 자릿수 인원으로 경력직 공채를 모집 중이다. 이 회사는 우수한 인재 영입을 위해 ‘웰컴 보너스’ 200만원과 함께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기본 주 4일 재택근무’를 내걸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IT 업계 내 인력 전쟁이 뜨거워지면서 인재 유치를 위한 다양한 처우 개선과 복지 제도가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비(非) ICT기업은 구성원의 디지털 활용 능력에 차이가 있다 보니 재택근무의 효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이분법으로 나누기보다는 ICT 기업도 혁신이 필요한 분야에는 대면 근무를 적용하고, 비ICT 기업은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등 기업별로 근무 체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