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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터 나쁘다? 풍수는 길·흉 못 바꿔" 명리관상학자 주장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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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명리관상학자 방산 노상진 선생이 8일 서울 일원동 방산정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명리관상학자 방산 노상진 선생이 8일 서울 일원동 방산정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대통령의 국정운영 성과는 집무실 터와 상관없습니다. ‘국정운영을 잘 하냐, 못 하냐’라는 건 전적으로 당선인 자신에 달려있는 겁니다.”

명리·관상학자인 방산(芳山) 노상진 선생이 지난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최근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 ‘풍수(風水)’ 논란이 불거진 것을 두고 “풍수로는 길(吉)·흉(凶)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겼을 때 국정운영이 잘 되고 못 되는 건 집무실 터에 있는 게 아니다”며 “만약 집무실을 옮긴 후 국정운영이 잘 된다면 전적으로 윤석열 당선인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를 비롯한 집무실 터를 두고 길지·흉지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에 대한 명리관상학적인 견해다.

방산 선생은 사주와 관상을 통해 정재계 인사의 자문역할을 해준 것으로 이름난 제산(霽山) 박재현(1935~2000) 선생 수제자다. 명리학에 관상학을 접목해 주목받았고, 관상을 소재로 한 KBS 드라마 ‘왕의 얼굴’ 등에 참여했다. 저서로는『돈 많은 얼굴 건강한 얼굴』 등이 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청사의 모습. 뉴스1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청사의 모습. 뉴스1

청와대 길지-흉지 논란은 윤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 구상이 알려지면서 블로그나 SNS상에서 확산됐다.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2000년 펴낸 『땅의 눈물 땅의 희망』에서 ‘청와대 터를 죽은 영혼이 사는 곳’이란 취지로 주장한 게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17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말은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당시 그가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 논의에 대해 “일설에는 ‘풍수가의 자문에 의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다.

방산 선생은 길지·흉지 논란을 설명하기 위해 조상묘 이장을 예로 들었다. 그는 “만일 역량에 한계가 온 정치인이 있다고 치자. 이들 중 상당수가 풍수에 기대 조상 묘를 이장한다”며 “그럼 장관감이 못되는 사람이 묘를 옮겼다고 인선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화장(火葬)하면 후손이 성공 못하나. 부부가 이혼하면 집 터 때문인가”라며 “이치에 맞게,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전경. 뉴스1

청와대 전경. 뉴스1

방산 선생은 집무실 이전 발표 뒤 “용산이 임금을 뜻하는 용(龍)자라 윤 당선인이 용산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것에 대해서는 “결과론적으로 끼워 맞췄다”고 했다. 그는 “용자를 써서 용산이면 서울 동대문 용두(龍頭)동으로 이전해야 하는 게 더 맞는 것 아닌가”라며 “전남 고흥에 나로호 우주기지가 들어서 있는데 높을 고(高)를 써서 그런 건가”라고 되물었다.

방산 선생은 명리학과 풍수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명리학은 태어난 연·월·일·시에 해당하는 네개의 기둥(사주)과 여덟 글자(팔자)로 한 사람의 운명·진로·부귀·흥망 등을 내다보는 동양철학”이라고 말했다. 풍수는 무덤·집 등의 위치나 지세에 따라 사람이나 운명의 길흉이 결정된다고 믿는 차이점이 있다. 두 분야는 현대사회에서 미신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도 있으나 한민족 정서에 상당한 영향을 줘왔다.

사실 풍수상 청와대의 길지·흉지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종학 풍수지리연구소장은 청와대 뒷편 북악산에서 좌우로 뻗은 낙산이 ‘청룡’으로, 인왕산에서 사직단으로 이르는 산줄기를 ‘내백호’라며 긍정평가했다.

방산 노상진 선생. 강정현 기자

방산 노상진 선생. 강정현 기자

청와대 경내 북악산 기슭 화강암 벽에 새겨진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란 글씨도 풍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최고 명당이란 의미다. 고려 때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표석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청와대 관저 신축공사 중 발견됐다.

당시 신축공사는 옛 기맥(氣脈)을 되살리기 위한 관저를 짓기 위해 풍수의 영향이 많이 반영됐다고 한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과 이후 취임한 대통령만 보더라도 본인 또는 가족이 줄줄이 수감되는 비극을 경험했다는 게 명리관상학적인 관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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