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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해도 마스크 쓰면 딴사람"...베테랑 형사 속태우는 '마기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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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현상수배범 신고가 줄어들더라고요.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그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부산 해운대경찰서의 베테랑 형사의 말이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사건 현장에서 나타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 추론은 통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살인 범죄자를 검거하는 데 3개월 넘게 걸린 사건의 비율은 12.0%(747건 중 90건)였다. 이전 10년에 비해 가장 높은 수치다.

코로나 이후 살인·강도 검거 늦어져

검찰과 경찰이 범죄자 추적과 검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 3년째에 접어들면서 일선서의 경찰들은 추적에 따르는 제약이 적지 않다고 호소하고 있다. 탐문 등 대민 활동, 범죄자 식별, 신고 등이 전반적으로 원활하지 않아서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된 것이 대표적인 애로사항이다. 범죄자들이 자연스럽게 마스크 뒤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 썼을 때와 벗었을 때 얼굴이 다르다는 우스갯소리 ‘마기꾼’(마스크 쓴 사기꾼)이 일선 사건 현장에서는 농담이 아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마기꾼은 따로 있었던 셈이다.

검찰이 이른바 '계곡살인사건' 용의자인 이은해(31)와 공범 조현수(30)를 지난달 30일 공개수배했다. 인천지검

검찰이 이른바 '계곡살인사건' 용의자인 이은해(31)와 공범 조현수(30)를 지난달 30일 공개수배했다. 인천지검

살인범 검거에 3개월 넘게 걸린 사건의 비율은 코로나 이전 10년에는 8~11%대였다. 주요 강력 범죄인 강도 사건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다. 검거에 3개월이 넘은 강도 사건의 비율이 2019년 12.2%(843건 중 103건)에서 2020년 16.0%(673건 중 108건)로 뛰었다.

최근 5년간 검거에 3개월 넘게 걸린 사건 얼마나 많았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근 5년간 검거에 3개월 넘게 걸린 사건 얼마나 많았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서울 관악경찰서의 한 형사는 “CCTV 영상 등에서도 얼굴을 곧장 식별하기 어려워졌다. 얼굴을 제외한 인상착의와 용모, 이용 차량, 동선 등 범죄자를 추적할 수 있는 수단에도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코로나 이후의 수사 상황을 전했다. 총경 출신인 이흥우 영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초기엔 탐문을 하거나 압수수색을 하면서 눈치 아닌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은해·조현수도 마스크 뒤에 숨었나

범죄자를 알아보고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타인신고’는 사건 해결에서 현행범 체포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신고도 줄어들었다. 2020년 살인범 검거 중 타인신고(22.1%·747건 중 165건) 비율은 코로나19 상륙 이전인 2019년(23.6%)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흥우 교수는 “얼굴 하관은 인상을 결정하고 상대방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실제 마스크로 하관을 가리고 모자까지 깊게 눌러쓰면 훈련받은 경찰도 범죄자를 알아보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계곡 살인’ 사건 개요 ‘계곡 살인’ 사건 개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계곡 살인’ 사건 개요 ‘계곡 살인’ 사건 개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경기도 계곡 살인 사건으로 공개수배된 이은해(31)씨와 공범 조현수(30)씨가 4개월째 도피 행각을 벌일 수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이들의 얼굴을 공개하며 수배령을 내렸지만, 추적에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에서 이씨와 닮은 사람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있지만, 유의미한 제보는 적다”고 말했다. 최종술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검찰 수사를 인지한 상태에서 치밀한 도주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은 데다 마스크 착용 일상화도 하나의 복병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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