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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고향에 새 공연장 만들자” 박성용 열정이 통영음악제 밑거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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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재단 설립자인 김승근 교수(오른쪽)와 현 대표 이용민. 두 사람은 2002년부터 함께 일했으며 김 교수는 2014년 이사에서 물러났고 이 대표는 지난해 선임됐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재단 설립자인 김승근 교수(오른쪽)와 현 대표 이용민. 두 사람은 2002년부터 함께 일했으며 김 교수는 2014년 이사에서 물러났고 이 대표는 지난해 선임됐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2002년 3월 15일 경남 통영의 시민문화회관에서 첫 번째 국제음악제가 폐막했다. 지휘자 정명훈과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무대에 섰다.

그리고 이튿날. 통영국제음악재단의 당시 사무국장이던 김승근 서울대 국악과 교수가 지목한 ‘음악제의 결정적 장면’이 펼쳐졌다. 고(故) 박성용 재단 이사장과 당시 고동주 통영 시장이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박 이사장님이 ‘이제 새 공연장을 지어야 한다’고 얼마나 열성적으로 말씀하시던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유럽에서 인정받은 작곡가 윤이상(1917~95)의 고향인 통영에서 국제 음악제를 막 마친 뒤였다. 1997년 개관해 신생 공연장이었던 시민문화회관의 880석을 채운 성공적 축제였다. 김승근 교수는 “(기존 공연장이 5년밖에 안 된 상황에서) 새 공연장을 짓는다는 건 당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결국 그런 상상력과 과감함이 현재의 통영음악제를 만들었다”고 했다. 새로운 통영국제음악당은 2013년 개관했다.

통영국제음악제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02년엔 서울에서 차로 7시간이 걸리던 어촌 마을에서 이룬 기록이다. 올해 24회 공연으로 이달 3일까지 이어진 20회 음악제는 객석 띄어앉기에도 총 관람객 1만여 명, 객석 점유율 85%를 기록했다. 유럽과 북미에서 인정받는 작곡가 진은숙이 예술감독을 맡은 첫해여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20년 동안 음악제의 명성은 부쩍 높아졌다. 진은숙 감독은 “해외에서 이미 많은 음악가가 이 음악제를 알고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차이퉁은 2016년 “아시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라는 표현을 썼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중 한 장면. 3일 소프라노 박혜상이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공연했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중 한 장면. 3일 소프라노 박혜상이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공연했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재단 설립자이자 초대 사무국장으로 음악제를 일군 김승근 교수, 지난해 취임한 이용민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는 “적재적소에 박 이사장님과 같은 인물이 있었다”고 지난 20년의 동력을 설명했다. 2014년까지 재단의 이사로 있었던 김 교수는 특히 “윤이상의 고향에서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모든 사람이 힘을 합했다”고 했다.

한국의 에든버러, 혹은 아시아의 잘츠부르크 축제를 꿈꾸면서도 통영의 땅에서 발을 떼지 않았던 점이 성공에 주효했다. 이용민 대표는 1994년부터 통영 중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통영시립소년소녀합창단, 여성합창단의 지휘자로 있다가 1회 음악제에 운영위원으로 합류했다. 그는 “서울 사람(김승근 교수)이 통영에서 윤이상의 음악을 위해 씨를 뿌리고 있는데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초창기 음악제에서 시민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린지 행사를 총괄하면서 지역민들과 음악제의 접점을 늘렸다. “외지에서 손님들이 오고, 세계적 수준을 담보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통영 사람들이 공연장을 꽉 채우고 음악제를 지지해야 한다고 믿었다.”(김승근)

무엇보다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사상 논란에 휘말렸던 윤이상을 위한 음악제는 정치적 논란이 될 수 있었다. 이용민 대표는 “당시엔 통영 내부에서도 윤이상을 금지된 이름으로 생각하던 사람이 많아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 여기에는 일찌감치 재단을 만들었던 전략이 성공적이었다. 이 대표는 “2대 이사장인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재단의 기틀을 다졌고, 자치단체장의 정치색에서 독립적인 활동을 가능케 했다”며 “멀리 내다보는 어른들이 있어 20년이 가능했다”고 전했다.

올해 음악제는 지난달 25일 미국의 43세 작곡가 앤드루 노먼의 2016년 곡으로 시작했다. 10년 전 만들어진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했다. 김승근 교수는 “처음에는 아시아에서 최고의 음악제 정도로 목표를 잡았는데 어쩌면 이미 세계적으로 일류의 자리에 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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