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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새 헌혈 가능 1000만명 사라졌다"…전국 피 마른 이유

중앙일보

입력

“피가 없으면 사람은 죽잖아요. 저희 남편은 혼자 피를 못 만들어요. 절박한 심정으로 지정헌혈을 구하고 있어요.”

경기도에 사는 가정주부 김모(46)씨는 남편에게 피를 줄 사람을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골수섬유증 진단을 받은 김씨의 남편은 혈액 생산 기능이 떨어져 주기적으로 수혈을 받아야 한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문제없던 혈액 수급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확보가 어려워졌다. 김씨는 “병원에서 코로나19 때문에 가진 피가 많지 않다고 했어요. 부랴부랴 SNS에 ‘지정헌혈’을 부탁하고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하루에도 수십 만명씩 확진자가 나오자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김씨처럼 혈액이 필요한 환자의 가족과 지인들이 SNS에 글을 올려 직접 헌혈자를 찾아 나설 정도다.

직장인 이모(28)씨가 지난달 16일 본인의 SNS에 올린 지정헌혈 호소 게시글. 이씨 제공

직장인 이모(28)씨가 지난달 16일 본인의 SNS에 올린 지정헌혈 호소 게시글. 이씨 제공

“대한민국 전체에 피가 부족하다”

가족과 친구를 살리기 위해 피를 구하는 사람들은 “애가 탄다”고 했다. 직장인 이모(28)씨도 지난 16일 할머니에게 지정헌혈을 해 달라며 도움을 청했다. 이씨의 할머니는 간암 투병 중으로, 일주일에 세 번 수혈을 받아야 한다. 이씨는 “3일만 피를 못 맞아도 할머니가 안 좋아지는 게 눈에 그대로 보인다”며 “답답하고 호소할 데도 없어서 친구들한테 헌혈을 부탁했다”고 했다.

직장인 김제영(40)씨도 급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뇌출혈로 쓰러진 친구를 위해 지정헌혈자를 구하는 김씨는 “친구 상태가 굉장히 안 좋다. 지금도 피만 겨우 멈춘 상태”라며 “병원 말을 들으니 ‘대한민국 전체에 피가 부족하다’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오미크론 변이로…혈액보유량 ‘주의’ 수준

코로나 19 장기화로 헌혈 기부자가 급감하면서 혈액 수급난 해소에 보건복지부 직원들이 팔을 걷어 부쳤다. 보건복지부 직원들이 지난달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헌혈에 동참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 19 장기화로 헌혈 기부자가 급감하면서 혈액 수급난 해소에 보건복지부 직원들이 팔을 걷어 부쳤다. 보건복지부 직원들이 지난달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헌혈에 동참하고 있다. 뉴스1

혈액 재고 부족은 코로나19 변이인 오미크론의 확산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4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측은 “오미크론 확산에 따른 감염 우려로 헌혈의 집 방문자가 현저히 감소했다”고 말했다.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 1~3월 헌혈 건수는 52만300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7만건가량 감소했다. 단체 헌혈 건수는 지난해 3월 6만건이 넘었으나 올해는 4만1397건에 그쳤다.

코로나19 완치자가 치료 종료 후 4주 동안 헌혈이 불가능한 것도 혈액 재고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이점한 헌혈의집 광화문센터장은 “확진일부터 따지면 사실상 5주(35일) 동안 헌혈이 불가한 것”이라며 “매일 30만명씩 확진자가 나온다고 치면, 5주동안 1000만명이 넘는 헌혈 가능 인구가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오미크론 변이로 확진자가 급증해 지난해 코로나 시국보다 헌혈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것이다.

혈액보유량에는 ‘주의’ 불이 켜졌다. 4일 14시 기준 혈액보유량은 2.8일분으로, 적정 혈액 보유량인 5일분의 절반 수준이다. 혈액보유량 1일분은 전국 의료기관이 하루에 사용하는 평균 혈액양(혈액팩 약 5400개)을 말한다. 올해 초 7.6일분과 비교해서도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다. 보유량이 3일분 미만이 되면 혈액수급위기단계상 ‘주의’로 분류돼 협조체제가 가동된다. 이날 보유량은 B형만 3.5일이었고, A형(2.7일), AB형(2.6일), O형(2.4일)의 혈액보유량은 각각 3일분이 안 됐다.

“헌혈에 적극 나서달라”

지난 3월 24일 세종대학교 용덕관 앞에 운영 중인 헌혈 버스 모습. 세종대학교 제공

지난 3월 24일 세종대학교 용덕관 앞에 운영 중인 헌혈 버스 모습. 세종대학교 제공

이에 일부 대학 등에서는 헌혈 장려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강대 총학생회는 5일 교내에 헌혈 버스를 설치해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헌혈하는 서강인’ 캠페인을 벌인다. 세종대도 오는 6월까지 매달 2~4회 헌혈 버스를 통한 헌혈 장려 캠페인에 나섰다. “코로나19로 헌혈 참여가 줄어들어 혈액이 부족한 상태다. 조금이라도 돕기 위한 마음”이라는 게 세종대 측의 설명이다.

혈액관리본부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어 국민들의 헌혈 참여가 혈액 확보의 유일한 수단이다. 그런데 최근 확진자 급증으로 헌혈이 많이 감소했다”며 “혈액 수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께서 적극적으로 헌혈에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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