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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시절 수입차 탔다, 盧정부 FTA 주도한 '개방론자' 한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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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한덕수 전 총리를 지명했다. 3일 윤 당선인은 “저와 함께 새 정부 내각을 이끌어갈 총리 후보자는 한덕수 전 총리”라며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 과제를 수행해나갈 적임자”라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신인섭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신인섭 기자

한 후보자가 무사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면 2007년에 이어 또다시 총리 자리에 오른다. ‘재수’ 총리는 헌정 사상 5번째(장면ㆍ백두진ㆍ김종필)로, 1987년 이후만으로 따지면 고건 전 총리(30ㆍ35대)에 이어 두 번째다.

이력은 화려하다. 194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이른바 ‘KS 라인’ 출신이다. 하버드대 경제학 석ㆍ박사 학위도 갖고 있다. 행정고시 8회로 70년 공직에 입문했다.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상공부(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이후 초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청와대 경제수석,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노무현 정부 말기 총리에 임명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 대사, 박근혜 정부에선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다. 비영리 민간 기후변화 대응 단체인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으로도 일했다.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수ㆍ진보를 가리지 않고 여러 정권에서 공직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윤 당선인도 이날 “정파와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정의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하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2006년 당시 한ㆍ미 FTA 체결지원장이었던 한 후보자(가운데)가 오찬에서 웬디 커틀러 미측 수석대표(왼쪽), 김종훈 수석대표와 건배하고 있다. 중앙DB

2006년 당시 한ㆍ미 FTA 체결지원장이었던 한 후보자(가운데)가 오찬에서 웬디 커틀러 미측 수석대표(왼쪽), 김종훈 수석대표와 건배하고 있다. 중앙DB

다양한 자리를 거쳤지만 전공은 통상이다. 경제 안보를 강조하는 윤 당선인이 그를 초대 총리 후보로 낙점한 것도 통상 전문가란 점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경제 관료로 일할 때 자기 색채, 목소리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통상 분야에서 만큼은 달랐다. 시장을 개방하고 다른 국가와 경쟁해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해온 대표적 ‘개방론자’다. 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 하버드대에서 유학한 게 시작이다. 이후 상공부로 건너와 미주통상과장을 맡으며 통상 전문 관료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장에 이어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 총리로 일할 때도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마무리 투수’ 역할을 전담했다.

개방론자로서 면모가 드러나는 대표적 일화가 있다. 통상교섭본부장 시절인 98년 수입차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시장 개방 노력을 알리겠다며 관용차를 스웨덴 사브 차량으로 바꿨다. 수입자동차협회에 직접 차종을 추천해 달라 요청도 했다. 장관급 관료가 수입차를 관용차로 선택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크린쿼터(연중 일정 기간 한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게 한 제도) 축소 논란 때도 한 후보자는 개방론자로서의 면모를 뚜렷이 드러냈다. 98년 7월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업계 위기를 극복하려면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ㆍ미 투자협정 협상 과정에서 미국 정부 측이 스크린쿼터제를 문제 삼으면서다. 국내 영화계에서 강하게 반발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돌아온 2006년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줄이는 결정을 이끌었다.

1999년 6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가운데) 등 영화인들이 벌인 스크린쿼터제 반대 시위. 중앙DB

1999년 6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임권택 감독(가운데) 등 영화인들이 벌인 스크린쿼터제 반대 시위. 중앙DB

정치적 색채는 강하지 않지만 경제 관료 출신인 만큼 세제ㆍ복지ㆍ재정 분야에선 보수 쪽에 기운다. 무역협회장 시절인 2015년 1월 최고경영자 조찬 간담회에서 “세율을 높여 경기가 위축되면 세수가 줄어든다”며 세원 확대를 주장했다. 재정 건전성이 중요하다며 ‘퍼주기식’ 복지 확대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다만 고령(73세)에다 최근 10년간 공직 경력이 없다는 건 단점으로 꼽힌다. 10여 년 전과 확연히 달라진 국내ㆍ외 정책 현안을 따라잡는 데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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